BigTravel, Asia #28 _ 저 버스인가 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등과 배로 배낭을 두개씩이나 맨 나의 굼뜬 걸음으로는 저 날쌘 양반들을 당해 낼 수 없다. 자리는 애시당초 포기다. 가만, 이거 자리가 문제가 아닌데. 버스는 이미 세계 신기록을 세운거 같은데 사람들이 계속 탄다.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기록을 만들려나 보다. 운이 좋아서 마지막 쯤으로 겨우 버스에 탔다고 생각했는데 나 뒤로도 사람들이 한참 더 탄다. 삼각 김밥 같은 버스다. 나는 그 귀퉁이에 든 밥알 하나. 뒤통수 쪽이 시끄러럽다. 몸을 돌릴 수 없어 겨우 곁눈질로 보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아저씨와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그의 아들을 향해 한 아줌마가 크게 떠든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 마당에 반토막 만한 녀석이 자리를 차지한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저씨도 대단한 방어 논리가 있는지 말싸움이 팽팽하다. 5분쯤 달렸을까? 버스는 한길가에 멈췄다. 실소가 흘러나오고 만다. 이미 세계 기록이 분명한데 딱 그만큼의 사람들이 '더' 탈려고 서 있다. 사람들은 창문을 넘어 버스에 올랐다. 아저씨와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그의 아들이 있는 자리의 창문으로는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그의 큰 아들이 넘어왔다. 아하. 이제야 상황을 알겠다. 그러나 아줌마 또한 그녀의 갓난쟁이 아기가 창문을 통해 버스로 넘겨지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피니쉬 블로를 날리는 아줌마. 말뜻 이해 못하는 내가 들어도 무서울 정도로 포스가 넘쳐 흐른다. 중학생 아들은 벌떡 일어나 서고 초등학생 아들은 아빠의 무릎으로 옮겨 앉았다. 홍해가 갈라져 땅이 드러나듯 드러난 자리에 앉은 아줌마는 앞섶을 풀어 젖히더니 대뜸 아기에게 젖을 물려 버린다. 아줌마 win, 그것도 perfect로. _ 1시간 쯤 달리던 버스가 멈춰섰다.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스무살도 채 안돼 보이는 조수는 한 숨 쯤이였나를 짧게 뱉더니 즉시 작업에 착수한다. 온몸을 다 활용해 매달리고, 발로 차고, 누르고를 하더니 무겁게 잠긴 볼트를 다 풀러내고 타이어 하나를 완전 발라내고 새 타이어로 바꾸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찌나 능숙하고 동작들이 화려한지 한 편의 '타이어 교체 쇼'를 본 듯하다. 박수. 작업과 뒷정리가 모두 끝나자 바가지에 물을 조금 받아 가루비누 한 움큼을 풀고는 손과 팔의 시커먼 기름때 들을 대충 닦아낸다. 헹구지도 않는다. 그럴 여유가 없다. 담배피고 볼일 본다고 늑장 부리는, 자기보다 한참 나이 많은 승객들을 채근해 가며 양떼 몰듯이 사람들을 버스로 다 몰아넣고는 자기를 마지막으로 힘차게 꽝하고 문을 닫는다. 선언처럼. 상황종료. 온몸에 정열이 배여있는 삶의 온도가 뜨거운 청년이다. 버스는 다시 출발 했고 나는 출입구 계단 쪽을 새자리로 차지했다. 조금 낫다. 조수는 아직 마르지 않은 땀을 옷 소매로 훔쳐내고 한숨을 돌리다 옆에있는 나를 발견한다. 의자라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작은 공간의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너는? 자기는 서서 가겠다고 한다. 그 자리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는데 말문이 막혀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더듬 더듬 뜻을 전했다. "너무 고맙지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건 네가 앉아야 할 자리야." 외국인 손님이라고 그렇게도 뭘 주고 싶은 걸까? 이번엔 비닐 봉퉁에서 '난'을 하나 꺼내 기름때가 피부에 배어버린 그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똘똘 말더니 반을 뚝 떼어내 하나는 자기 입에 가져가고 하나는 내게 건넨다. 엉겹결에 빵을 받아들고는 한참을 있다가 한 입, 두 입 베어 먹는다. 목메여. 더럽다거나 마실거리 없이 빵을 먹어서가 아닌, 이 뜨거운 목 메임. _ 보고만 있어도 몸서리 쳐지는 풍경도 있고 천년의 귀기가 서려있어 절로 쭈삣쭈삣 소름이 돋는 유적들도 좋지만 역시나 여행이 주는 최고의 감동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평범한 말이지만 확실한 진언이다. 터질듯한 생명으로 꽉 찬 이 건강한 삶들이 나의 나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세상에 여행만큼 좋은 학교가 없다. _ 모이낙 가는길, 우즈베키스탄, 2008 *난 - 주로 아랍 문화권에서 주식으로 먹는 피자 베이스 같은 동그랗고 넓은 빵. 중앙 아시아 쪽 난은 특히 크고 두껍다
호모트레블쿠스
2008-08-0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