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릭스]
어제는 촛불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봄바람 부는 냇가 따라 마당에 모여 밤 11시가 다 되도록 촛불을 밝히고는,
미친 소 걱정과 미친 교육 걱정을 털어 놓고 있더군요.
노래꾼 김장훈은 내일은 해가 뜬다며 신나는 응원도 하고 갔습니다.
목하 주제는 일견 먹거리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는 아니고,
먹거리가 충분하다는데도 자꾸 병든 먹거리를 먹이려는 자가 있어 문제라 합니다.
다들 아실 테지만 석 달 전 이 동네 이장 감투를 쓴 이가 그 일에 그리 열심이라지요.
견문이 넓은 이웃들 얘기를 들어보면,
유전자 변형 옥수수나 콩의 경우처럼 그 무해함을 정확히 검증하지 않은 채,
이리 들여오는 먹거리가 한 둘이 아니라 합니다만,
여하튼 이번 이장은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 미친 소를 냅다 사들이겠다고 했답니다.
자못 흥미 있는데다 당장 남의 일이 아닌지라 자세한 사정을 들어 보았더니,
오래 전에 보았던 활동사진 [매트릭스 Matrix]가 생각나더군요.
왜 거기서 있으나마나 한 인간의 뇌 굴려서 발전한 에너지를 쪽~쪽~ 다 뽑아먹은 후에,
그 시체를 헛되이 폐기처분치 않고 액화시켜 다시 인간에게 먹이는 재활용을 실천하잖습니까?
말 그대로 뇌가 빈 이 미친 소란 것이 그와 같은 과정의 결과물이니,
풀 뜯어먹고 사는 녀석에게 제 동족의 살과 피를 먹이는 짓을 하다,
결국에는 일단 걸렸다 하면 죽지 아니 못하는 일격필살의 병을 창궐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하긴 요즘 이 가엾은 종족의 얘기는 [미트릭스 Meatrix]라는 활동사진으로 나왔다지요.
그런데 뇌가 빈 소를 인간이 먹게 되면 말 그대로 뇌가 빈 인간이 될 수 있다 하니,
그나마 매트릭스 안에서라면 달콤한 꿈이나마 실컷 꾸다 갈 수 있으련만,
이 미트릭스라는 놈은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하니,
가히 매트릭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다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역시 견문 넓은 이웃들 얘기로는,
아마도 이장이란 자는 벌써부터 이 미트릭스에 갇혔다고도 하는데,
물정에 어두운 제 소견으로는 이 양반 뇌 용량이 어찌 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미치릭스]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아키텍트를 꿈꾸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미친 것이 어디 소뿐이겠습니까.
듣자 하니 이제 전기와 수도는 물론이고 교육과 의료까지 전문 장사치들에게 맡길 모양이니,
찌질한 인생들이건 폼나는 인생들이건 돈에 미치지 않고는 못 배겨 나도록 만들어,
이건 뭐 굳이 미친 소가 아니라도 충분히 미치릭스 형국이니 말입니다.
목하 주제 중 하나인 교육만 보자면,
무뇌 되기 싫어서 미친 소 한사코 못 먹겠다 하면서,
정작 무뇌 사육하는 미친 교육은 벌써 반세기가 넘도록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방목을 결정한 바,
이 자유 누리는 것은 아이들도 선생들도 부모들도 아닌 다름 아닌 장사치들이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미치릭스]가 건설되고 있는 이 5월은 본시 이래저래 사연이 많은 달입니다.
멀리 석선생이 태어났다는 날도 들었고,
중간 어느 즈음엔 마선생이 태어난 날도 들었고,
아이의 날도 들었는가 하면 부모의 날도 들었고 서운할까 싶어 선생의 날도 들었습니다.
1871년 파리에서는 잠시나마 코뮌이 건설되었다 파괴되었는가 하면,
1961년 서울에서는 4·19 혁명을 뒤집는 5·16 쿠데타가 일어났고,
1968년 세계 이곳저곳에서 다시 한 번 희망의 불길을 당겼는가 하면,
1980년 광주에서는 겨우 열흘간의 코뮌이 건설되었다 역시 쿠데타에 의해 파괴되었지요.
들춰보면 이래저래 한숨 내뱉게 하는 달입니다만,
신기하게도 그 한숨에 생명이라도 얻는 듯 꺼질 만하면 다시 살아나는 불들이 있어,
마침내 이번엔 들불 될까 싶어 어리석게도 또 희망을 얘기하게 됩니다.
2008년 5월 18일 서울 하늘은 어둡고, 실없이 넋두리는 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