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더해가는 것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다행히도 몇몇 살림은 즉,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티브이는 동생에게, 냉장고는 엄마에게, 에어컨은 장모님께, 전자레인지는 친구에게, 전시에 썼던 사진들은 또 다른 친구에게 보냈다. 하지만 대부분은 처참히 버려야 했고 거기에 미련마져 폐기처분해야 했다.
유학이란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독일에 오자마자 늘어가는 건 또 다른 살림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소유의 삶을 희구하며 살았지만 그것은 소수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상 불가능한 삶이다. 내게는 내 몸뚱아리만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난 결혼을 할 즈음에 나 스스로 당당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결혼을 한 성직자도 구도의 삶을 살 수 있으며 또 그것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음을 내 삶을 통해 보여주겠노라고. 난 그 과정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강 그 결론을 짐작할 수 있다. 제3의 길이 아닌 이상 그것들은 흉내내기에 불과하다고, 너무나 요원한 것이라고.
다시 늘어버린 살림을 또 한번 정리할 기회를 맞았다. 또 한번의 이사. 정말 이제 다시는 살림을 늘리는 역행의 삶을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짐들을 거의 대부분 폐기했다. 버리고 버려 남은 게 23박스. 그 중에 대략 8-9박스는 딸래미의 것, 그리고 반씩 아내와 내 것이 되겠다. 대략 8박스 정도 소유하고 있는 셈인가? 한국에 두고 온 수백권의 책을 함께 산정해야 하겠지만 어쨋거나 이곳의 나그네 삶에 꼭 필요한 것이 8박스 정도라는 데 약간 안심하며 이사 했더랬다.
이제 곧 또 한번의 이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마 다시금 그동안의 삶을 결산해보는 시간이 되겠고 아마 또 한번의 폐기, 절망,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인생은 덧셈이다. 하지만 뺄셈은 내게 유효하고 의미있는 도전을 안겨준다. 더이상 더할 것이 없는 인생은 곧 죽음이겠지만 난 그 종말을 오늘로 끌어안고 종말의 삶을 살아내는 의연함을 누리고 싶다. 그것이 아마 내 유학생활에서 깨우치고 체화해야 할 하나의 삶에의 태도가 아닐까. 심지어 이곳에서 배운 모든 하잘것 없는 지식들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