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Travel, Asia #15 _ 버스는 중국의 서쪽 끝 카슈가르에서 출발했다. 승객의 많은 수가 보따리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우즈벡 사람들이였고 거기에 몇명의 키르기즈 사람들과 네명의 한족, 카자흐스탄에서 사업을 하는 일본인, 여행 온 유대인, 그리고 내가 포함되어있었다. 버스는 포장되지 않은 길의 울퉁불퉁한 모양을 고스란히 흔들림과 충격으로 맨 뒷자리에 누운 나에게 전했고 나는 숨쉬기가 하도 괴로워 신체를 포기하고 싶었다. 24시간 만에 도착하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에게 주문같은 구차한 위로를 보내며 밤이 시작될 쯤에는 실신에 준하는 죽음처럼 깊고 무거운 잠에 빠졌다. "친구! 친구!" 낮에 인사를 나눴던, 한국에서 1년 얼마간 일했다는 우즈벡인 친구가 나를 불렀다. (낯설기도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의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없다. 괴롭다.) 버스는 멈춰있었다. 가라앉은 몸이 잠에서 빠져 나오지를 않는다. 베게로 삼고 있던 잠바를 느릿 느릿 챙겨입고 나가보니 칠흑같은, 완벽하게 검은 밤을 배경으로 눈이 쏱아지고 있었다. 펑펑. 버스는 길과 길 아닌곳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모두들 버스 엉덩이에 달라붙어 아우성이 대단하다. 하지만 버스는 제자리에서만 움찔움찔 대고 만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완고해 보인다. 천번은 족히 밀었을텐데 제자리다. 모두들 난방 장치도 없는 버스에 다시 올라 눈과 추위를 잠시 피한다. 바깥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졸립다. 묵직한 적요를 깨는 누군가의 선동에 모두들 뜨거운 입김을 뱉으며 다시 몸부림이다. 조심스럽게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조난을 상상했다. 큰일났다. 사람들은 필사적이였다. 나는 배낭 내려놓는 그곳이 집이고 삶이지만 이들은 가정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 차이가 만들어낸 작은 기적일까? 사투라 불러도 좋을 만한 그 끔찍한 몸부림 끝에, 하늘에 푸름이 베이기 시작해 먼산의 윤곽이 겨우 보이기 시작할 무렵 우리를 끝내 허락하지 않을것 같았던 이르케쉬탐 고개가 열렸다. 우즈벡어, 키르기즈어, 위구르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그리고 나의 한국어 까지 여러 언어들의 난무 속에 악수와 포옹들이 오가는 짧은 축제가 펼쳐진다. 잔인하고 가혹했던 이르케쉬탐 고개에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선이 그어져 있다. 한 달음이면 충분히 넘을 그 선의 양쪽에서 하나같이 여권과 비자를 살펴보고 도장들을 찍어대고 보따리 물건들을 검사하고 또 어김없이 세금이란 이름의 돈을 걷어간다. 그 세금을 왜 내야하는지 '사실은' 잘 이해가 안되는 보따리 상인들과 원칙도 없고 보따리에 뭐가 들었는지 보지도 않으면서 세금을 '뜯어'내던 깡패 같았던 세관원 사이의 소요, 고성, 악다구니, 몸싸움. 가만히 잘있는 산에다가 있지도 않은 선을 하나 그어 넣고 인간들 하는 짓이 가관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인데 하나도 안 웃기고 이렇게 슬프기만 하나? 의미가 없다. 여행이 나를 무정부주의자로 만든다. _ 버스가 마지막으로 쉬어간곳은 외딴 산길의 작은 식당이였다. 그곳에는 담을 대신하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다 그 물을 떠서 마시고 있다. 시원하다. 그냥 떠마시다니. 너무 생경한 경험이라 온 몸이 약간 떠오르는거 같다. 붕-. 간밤의 노고에 대한 충분하고도 과분한 보상이다. 이제 막 키르기즈스탄에 도착했을 뿐인데 오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다. 벌써. _ 키르기즈스탄, 2008.
호모트레블쿠스
2008-04-16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