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
아마 여기서 사진을 찍은 게 작년 10월 중순을 넘어선 어느 목요일이었을 겁니다. 지금 여자친구하고 첫 데이트를 한다고 카메라를 들고 낙산으로 갔습니다. 창신동 골목으로 들어가니까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긴 거긴 언제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낙산 프로젝트 그림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찾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 동네의 특이한 경치를 찾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이라면 남이 와서 자신들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기는 게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겠죠. 그 날도 저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그 동네의 이곳저곳을 찍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이 사진에 나오는 부분 바로 아래쪽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걸 저와 여자친구가 보았습니다. 그게 왠지 좀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모습이어서 둘이서 찍자 찍자 하고 렌즈의 촛점을 맞추고 있었을 때, "하이구~ 돈도 많으셔. 그걸 왜 찍으신대? 그 지저분한 걸? 아주 돈이 남아 도시는구만." 하고, 바로 옆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시던 할머니가 소리치셨습니다. 저와 여자친구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면서 말이지요. 기분이 참 이상했습니다. 아주머니 사진을 뭐 예쁜 것만 찍으란 법이 있나요 내가 이걸 원해서 찍을 뿐인데요 그리고 내가 뭘 찍던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 순간에 그 쓰레기 더미를 찍으려고 하던 나도 그 아주머니도 주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사람들도 그 동네도 모조리 궁상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그 뒤로는 그 동네에 가질 않게 됐습니다. 근데 이 사진 보니까 다시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