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에서 - varanasi
Burning ghat (화장터)
- 어때요, 당신도 버닝 가트를 찍고 싶습니까?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던 날이 있었다.
작년 봄, 촬영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들떠
바라나시를 처음 찾았을 때
나는 배를 채울 무언가를 찾아 버닝가트 골목을 뒤지고 다녔다.
실로 원했던 것은 사진이 아니라 먹을것 이었다.
끼니를 채워야 사는 하루의 하찮음 앞에서
무거운 여행용 배낭과 사진가방을 짊어진 나는 무작정 서러웠고
1분마다 행렬과 함께 내 앞을 스쳐가는 시체와 향신료의 냄새를 맡으며
봄철, 먼 나의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꽃과
생명력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준비도 없이 치기만으로 무작정 떠난 나의 첫 여행은 무서웠다.
나에게 칼을 겨누었던 아그라의 청년보다, 가트에서 나에게 사기를 친 소년보다
이 땅에서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진정 내가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었다.
짧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모두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내가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다.
말로만 듣던 한국 식당은 미로같은 골목에 숨어 찾을 길이 없었고
한국인은 커녕 생김새가 비슷한 동양인조차 찾기 힘들었다.
버닝 가트에만 들어서면 허공을 가득 메우는 재와 아찔한 꽃냄새 -
나는 항상 이곳에서 길을 잃었고 오래 머물렀다.
노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
다사스와메드 가트를 지나 빅 버닝 가트에 이르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모든 시신이 한꺼번에 타오르는 언덕의 뒷편 골목, 항상 큰 문을 열고 앉아있다.
송장들이 꼭 지나야 하는 그 마지막 길목에서
반듯하게 앉아 안경을 고쳐 쓰기도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경전을 외우기도 하며
결코 그는 작년 봄의 어리숙한 한국인 청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지만
다시 찾은 버닝가트의 뒷골목, 여유로이 식사를 마치고 나온 내가
카메라를 꺼내들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깊은 눈으로 나를 오래 응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