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주신 오만원
"엄마~!"
이 얼마 만인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가장 강력한 사회화교육기관이라는
군대에 다녀온 뒤로 쏙 들어갔던 '엄마' 소리가 이십년 만에 저절로 튀어 나왔다.
엊그제, 평택 누나네로 모셔다 드리던 차 안에서
말없이 조수석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불쑥 내게 오만원을 건네셨다.
"따뜻한 밥 사먹고 애들 군것질거리도 좀 사주거라."
"아, 엄마 왜 이래요? 엄니 이러시면 내가 더 속상하당게."
당황한 내가 엄마와 엄니를 섞어부르며
연신 손사래를 쳤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시다.
"너 요즘 이래저래 힘들지? 내 다 안다.
허나 이런 때일수록 네 곁에 있는 이들을 더욱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미운 생각하면 자꾸 미우니까 그저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이거니 생각하고.
나도 젊어서는 범띠 호랭이 성격 어디 안 가고 파르르 파르르 했다마는
지나보니 그이들이 죄다 내게 귀한 사람이더라"
알량한 학원장 노릇 이 년에 나는 참 많이도 망가졌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낙관을 잃은 것이 그 첫째요,
돈 모르고도 맘 편히 잘 살던 내가 날마다 통장 잔고 확인하는 좀팽이가 된 것이 그 둘째요,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에 수심 그늘 넓게 드리운 것이 그 셋째일 것이다.
어머니 앞에서는 일부러 내색 안하고 늘 씩씩한 체 했건마는
배 아파 난 자식의 신고를 당신께서 어찌 모르시랴.
끝내 돈 많이 벌란 말 안 하시고 사람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만 하신
어머니의 마음이 고마워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어머니가 주신 용돈 오만원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운수 좋은 날>의 인력거꾼 김첨지보다 푼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