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나방애벌레
애벌레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1981년, 우리 집은 셋방을 살았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주인집 애들은 유난스럽게 극성을 떨었다.
"야! 이 눈 우리 아빠가 안 봤으니까 밟지 마."
난 주인집 애들이 시키는 대로 이미 난 발자국을 따라 조스럽게 대문과 방문을 오갔다.
하지만 누나들은 그런 룰 따윈 신경 쓰지 않았고 편하게 눈을 밟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주인집 애들을 떠올리며 나만 가슴을 조렸다.
그치들은 옥상에 올라가는 것도 자기 기분에 따라 허락을 하곤했다.
난 정말 옥상을 좋아했다.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을 세고, 동네를 내려다 보면 세상이 달라 보였다.
85년 집을 장만했을 때 제일 먼저 물었다.
"아빠! 옥상 있는 집이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다. 대문 앞에서 주인집 아들이 지렁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붙어 지렁이를 구경했다.
집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다짜고짜 물었다.
"대문 앞에서 봤어 안 봤어?"
"뭐?"
"벌레!"
"봤어요."
엄마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옷을 모두 벗겨 목욕을 시켰다.
난 울분을 삼키며 목욕을 해야했다.
우리 엄마는 벌레를 싫어했다.
한번은 주인집 애들이 김칫거리로 사 온 배추에서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찾아내 우리 방 창틀 위에 올려놓았다.
엄만 그걸 보고 점심 먹은 걸 모두 토해냈다.
얼마 전 엄마가 이 사진을 봤다.
"이쁘게 생겼다. 이런 것도 찍냐?"
엄마는 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