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나는 내부에 있기를 좋아하고, 그것이 정녕 외부의 일이라 할지라도 신경 쓰는 일은 금기시하고 있다. 스멀스멀 시간들이 내게로 와 또아리를 틀면, 더할 수 없는 부피로 나를 감싸지만 나는 금방이라도 그것들을 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익숙하다. 사람들 틈에 음흉하게 잠입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사이 좋은 관계 속에 자리를 잡고 터주대감 행세를 할 때가 있는 데,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나는 꽤나 진수성찬을 받을 수 있고, 어떨 땐 맨밥 신세를 면치 못할 때가 있다. 나는 또 굼뜬 동작을 즐겨하고, 쉽게 소리 내지 않지만, 나와 친분이 두터운 것들은 얼마나 진중하며 사려 깊은 철학을 지니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나는 초식의 성질을 닮아있고, 되씹음의 미학을 즐길 줄 알며 누구도 내게로 와 소외된 적이 없음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나의 죽살이는 어정쩡한 경계에서 확인되고 사랑 받는데, 특별히 그 질량을 가벼이 하거나 묵직하게 만들 생각은 아예 하고 있지 않다. 다만, 나를 사랑 하는 것들에게 나른한 오후를 매번 선물하고도 기쁘거나 슬프지 않다는 것이 가장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라 여기며 오늘도 나를 안고 싶은 이들에게 온 몸을 열어놓고 있다.
알섬
2007-11-25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