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다고 느끼며 바라보는 동안에야 비로소 특별한
2006.11 관악산
황사가 온 하늘을 뒤덮어서 날씨는 맑은데 온통 뿌옇게 보이던 날이었다.
이런날 사진이 될까하고 단풍을 기대하며 산을 올랐지만 당초 예상했던 대로 원하는 단풍 사진은 얻을 수 없었다. 10월이나 되어야 산이 물드는데 이제 가을 옷을 벗어던진 산은 오히려 더 푸르기도 하고 군데 군데 붉은기가 조금 보일 뿐 단풍이라고는 볼 수 가 없었다. 산이 단풍보러 올라가는 곳 만은 아닌데 단풍이 없어서 마음이 허전할 줄이야. 황사는 황사대로 찍는 사진마다 덮쳐와서는 모든걸 다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흐리멍텅한 사진들을 찍고 지우고 수십 번을 하다 보니 여태 생각하던 '찍으면 찍히는 작품의 세계'에 대한 환상이 황사 걷히듯 날아가고 있었다.
관악산은 올라가기는 험해도 능선에 다다르면 산책로가 따로 없이 수월하기만 하고 내려갈 일이 답답해서 밥 때가 지나도록 이리 저리 서성이다가 갈려고 하던곳 지나서 몇 발짝 더 디디다 내려오게 만드는 사람을 붙잡아두는 산인것 같다고 혼자 생각 해 본다. 이 구석 저 구석 돌아봐도 인적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등산객이 많아서 어쩜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닌 것 같긴하다. 발 밑으로 내려다 뵈는 산 아래 마을은 천 만 명도 넘게 산다는 꽤 큰 도시라서 건물에 건물이 가리고 멀어서 희미한 산 밑까지 집들이 빽빽하다. 사람이 많기도 많고 차들도 많기도 많다. 어디 그 뿐이 아니라 길게 늘어선 강 줄기를 따라 보이는 많고 많은 다리들에 길게 늘어서 있는 자동차들을 보고 있으면 바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구나 싶어진다. 일 주일 내내 바쁘게 살았는데 하루 이틀 휴일이라고 쉬는 날에도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보니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다르고 특별한 삶이 되었으면 하고 어린 시절 바랬던 인생이 있었다. 멀고 먼 훗날에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던 그때는 이미 십년도 더 지나 이 십년도 더 지나버렸다. 이제 지난 날을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도 않고 어디 가서 큰 소리 한 번 못 내는 발 밑에 천 만 사람들 사는 곳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비슷 비슷한 한 사람이 되어 있다. 더 낫다고 할 수도 모자라다고 할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린 '나'라는 사람의 장년은 이제 막 시작이 되어가고 있는 것 이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평범해 진 것이 아니라 특별해 지고 싶은 사람들 속에 있어 그들과 차이가 없으니 평범해 보이는 거라고 스스로 생각을 해 보고 살짝 웃었다. 잠깐 스쳐간 생각 이었지만 그동안 특별해 지고 싶어 특별한 것만 생각하다보니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인 것을 생각하지 못 한 채 지나치고 있는 것 이었다.
특별함, 그건 당초 특별해서가 아니라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끼게 되는 지극히 상대적이고도 그것이 특별하게 인식되면 절대적이 되는
상대적이고도 절대적인 평가 가치의 기준이다. 길가에 핀 꽃이, 발 디디며 올라서는 바위가, 손 짚으며 돌아서는 나무 등걸이, 늘 특별하게 생각되어지지는 않게 마련이다. 굽이 굽이 돌아서 한참을 가다 돌아서서 쳐다보면 거기 있을 때 보았던 느낌 없던 그 사물들이 '풍경'이라는 커다란 경치로 바라보여 질 때 눈길을 붙잡아 끄는 매력이 느껴진다. 그 길을 지나 올 때는 그저 평범해 보였던 그것을 다시 바라보면서 놀랐다.
특별하다고 느끼며 바라보는 동안에야 비로소 특별한 경치를 발견하게 된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