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시간이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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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궁금한건 아니었어, 단지 불이 필요했을 뿐이었지 남모르는 여자애가 혼자 동물원에 와서 뜬금없이 불을 빌린다면 그는 당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언제였던가 그네들을 기다리는 피씨방에서 불이 없어 옆자리에 앉은 사내가 담배를 피우길래, 불있으면 좀 빌려주세요 라고 말을 하니,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라이터를 툭 던졌거든 나는 곱게 불을 붙이고, 감사합니다 하며 그에게 돌려주었어, 그는 기분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어, 어쩌면 툭, 던지는것은 그의 원래 성격일지도 모르고, 의도하지 않은 툭 던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암튼 나는 그 이후로 불을 빌릴때는, 불먼저 빌리지 말자했지 솔직히 내가 모르는 이에게 불을 빌린게 그게 처음이었거든. 두번째는 9월의 찜질방에서였어, 여자흡연실에 갔는데 불이 없는거야 가방에 두고온게지, 그래서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녀에게 불을 좀 빌려달라고했어, 그녀는 쳐다봤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는 것 같기도했어, 그리곤 불을 순순히 내 주었지, 그녀는 반 남은 담배를 다 피우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어, 나간 그녀를 생각하는데,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은거야, 그래 그녀를 알아, 그녀를 본적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오랫동안 봤었어, 그래 나는 그녀를 알아, 그녀는 방송에 종종 나오던, 음반까지 냈던 유채영이었어, 한참만에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냈지 하지만 지금은 어느 방송에서도 볼수없는. 내가 텔레비전을 잘 보지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마.
그래서 시간을 물었지, 그는 뒤적이며 라이터를 찾아내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이었거든. 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을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네, 시계도 그리고 누구나의 소지품으로 여겨지는 핸드폰도 없었지 그는 죄송하다면서, 자기도 시간을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시간 쯤이야 중요하지 않아, 나는 갈증이 나있는 상태이거든, 그리고 시간은 이미 알고있거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곤 바로 고개를 돌려 얼룩말을 쳐다보는 그에게 불을 빌릴 타이밍을 놓치고말았어,
나는, 더이상 그를 보지않고 얼룩말을 봤어 생각보다 작았어, 그리고 통통했어,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검은 하지만 빛나는 얼룩말의 눈을 보았지, 그렇게 세세히 보고있을 찰라, 옆에 있던 그가 나를 돌아보며, 누구 기다리느냐고 물었어 그의 담배는 거의 마지막 순간이었지, 나는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꺼내며, "네, 불 좀 빌려주세요." 라고 말을했지, 그는 미처 몰랐다는 듯이 혹은 알고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다는 듯이 허둥지둥 거리며 라이터를 찾아댔지, 어라, 금방 있었는데, 이상하다 나는 담배를 꺼내, 손가락에 걸고있었어 그는 그런 나를 보면서, 잠깐만요 분명 제가 금방 피웠거든요 어디다뒀지, 그런식으로 계속 찾아댔어 그는 다 빨린 담배를 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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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