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든 길에 있었다
잘 못 든 길에 있었다 구름이 하늘과 포개져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통과하는 반쪽 문엔 오래 묵었으나 늘 그대로인 청사(靑蛇) 두 마리가 자유롭고 나머지 반 쪽 문은 문짝도 없이 사람들을 마냥 불러들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예고도 없이 집들이 들썩거리고 문 스스로 사람들을 초대하느라 바쁘고 잘 못 든 사람들을 위해 길은 모습을 가리우고 사라져버리지만 오른 옆구리로 난 길은 또 다른 이를 위한 배웅을 준비하게 하는 배려가 있었다
쩍쩍 갈라진 고목의 살 틈으로 백 살은 먹었을 개미들이 이를 쑤시며 다리를 꼬고 있고 늘 흉악해보인 목장승도 선사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모자로 쓴 채로 배시시 웃다 말다 울다 말다, 오래 산 것들은 한 번쯤 제멋대로 살아라
고
몸만 남은 넋나간 30촉 전구알 옆으로 산사인 척 몸을 울리는 풍경소리 머얼리 강을 끼고 다른 세상이 언뜻언뜻 보이고 이미 자발적으로 쫓겨난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고 돌아온 것은 애초 몰랐던 후예들의 집
산 한 가운데로 구름다리가 놓이고 그 곳을 넘나드는 청사(靑蛇)들도 어찌할 수 없는
에코의 자궁
잘 못 든 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