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바라보는 방식
▲사진은 빼곡히 자리 잡아 무겁게 느껴지는 기와와 그 아래 조그맣게 자리 잡은 두 노인을 그리고 있다. 옛것의 상징 중 하나인 기와와 그 밑을 지나는 두 노인이 힘겨워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아직 더 많은 길을 걸어가야 하고 그 지난 길은 이미 뿌옇게 흐려져 있다.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 한옥마을
일시 : 2007. 06. 03 17:57
오래간만에 함께한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친목 도모를 위한 삼청동 출사에서 잘 나온 사진은 기말 레포트로 제출하겠다는 나만의 목적을 갖고 임했던 모임이었기에 나름 괜찮은 사진을 가져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계속되는 밤샘으로 조금 귀찮기도 한 일요일 오후, 햇볕 쨍쨍한 무더운 여름날씨, 날이 너무 좋아(?) 고생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며칠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라 미루기도 어려운 상황 ……
삼청동은 생전 처음가보는 곳이었고, 도시위 섬같이 떠있는 한국다운 모습이 오히려 이질감 을 가져와 나에겐 가벼운 문화적 쇼크로 다가왔다.
청와대를 이웃으로 둔 이 마을의 모습은 삼엄함에서 오는 아늑함 또한 매력이었다. 한옥마을로 들어서기 전 약 100M마다 ‘기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고, 검문을 당하고, 주의사항을 들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옥마을에 도착하여 나름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느껴지는 적막함과 평온함, 셔터소리만이 이곳에서 존재하는 소리의 전부인 냥 철컥거리는 것이 오만해 보일 정도로 고즈넉한 이곳은 도시의 역설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스쳐간 두 분의 할머니, 언 듯 동년배로 보이는 두 분은 바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아니 어머니와 딸일지도 모르겠다. 한분은 다른 한 분에게 ‘어머니’란 호칭을 하고 있었기에 지례 짐작하는 그 두 분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고, 거동이 불편하신 노모를 부축하는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또 다른 할머니는 항상 그렇게 해왔다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앞에서 오만한 셔터박스를 열 자신이 없었기에 뒤에서 나마 도둑촬영을 하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땀을 흘리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던 나와 친구들은 간단한 저녁식사와 놀꺼리를 찾으러 명동을 찾아 갔다.
남산타워가 내려다보는 현란한 불빛의 동네의 요란함은 삼청동의 고즈넉함, 적막함과 너무나 다른 것이기에 이곳이 저 위쪽 1Km남짓 떨어진 그곳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내 나이또래의 젊은이들이 서비스를 받고, 필요한 물건을 사며 돈을 쓰는 곳, 그저 어려운 경제 서적들을 들춰보면 나오는 ‘시장경제체제’라는 단어에는 잘 부합하는 곳이겠지만 오래된 한국인 정서 체계에는 무엇인가 일그러진 단면일지 모른다. 서구적 건축양식의 건물 안에서 서구적 인상을 갖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 곳이 한국이며, 현대사회이기에 그 문화를 즐기는 내가 삼청동 한옥마을에서 문화적 쇼크를 받은 것일 것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있는 위 사진은 두 노인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있을 때 비니 모자와 디지털 카메라를 든 나는 그 옆을 무심코 지나가며 단순히 고부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단정지어버렸다.
하지만 삼청동을 내려와 명동으로 들어섰을 때 떠올랐던 두 노인의 모습은 역사였으며, 과거 였고, 현대인들이 아늑함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끼는 옛 안식처이기도 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 넉넉하고 여유로움만으로 다가오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두 노인을 처음 봤을 때 막연히 아름답게만 느껴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삶은 여유롭고 낭만적이지 만을 않을 것이다. 그 더운 여름 노모를 모셔야하는 불편함, 그 속에 더 크게 자리 잡은 책임감이 복합되어 이제는 당연함으로 다가와 버린 낡은 인생 …… 이것이 내가 삼청동 한옥마을에서 느꼈던 것이고, 내가 오래된 옛 것을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