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날씨가 따뜻해지자 아내는 며칠 전부터 실시하겠노라 선언한 유리창청소를 기어이 시작했다. 아침부터 머리도 감지 않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둘째 딸의 머리끈을 질끈 동여맨 채 소박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으로 유리창을 꼼꼼히 닦는다. 아내의 손길이 지날 때마다 거의 반투명에 가까웠던 우리집 거실유리창이 투명하게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거실유리창은 깨끗해져서 좋은데 어찌 아내는 제 몸 하나 돌아보지 않고 이토록 유리창청소에 몰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순간 아내에게 현실적인 시급함은 누가 뭐라고 해도 거실유리창 청소다. 빡빡 힘을 주어 유리창을 닦고 있는 아내를 등 뒤에서 바라본다. 걸레는 점점 더러워지고 아내의 기분은 여전히 즐겁다. 조만간 아내에게 근사하고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사주어야겠다고 다짐해야하건만 실상 경제권을 가진 사람도 아내다. 소모되는 모든 것들을 보충하고 제 모습을 찾아주느라 절대로 쉬지 않는다. 가끔씩 가려운 머릿속을 벅벅 긁어대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해야 할 일을 찾아보지만 신기하게도 내 눈에는 그게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도태되었다. 아내가 나를 버리면 나는 어부들에게 잡혀버린 심해의 갈치처럼 곧바로 죽을지도 모른다.
무심한 일상
2007-06-12 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