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순결
1
징조도 없이 설움은 닥쳐왔다
울컥 가슴이 빠개지는 소리가 들리고
살들을 제치고 뼈들이 희나리가 되어 쌓인다
해체를 위한 해체인가
나는 덜렁덜렁한 살들만 보둠고 벽을 기어간다
스멀스멀한 기운이 싸아하다
쫓겨났다, 벽돌이 차갑다
생산을 위한 해체라고 위로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벽돌도 벽을 낳는데
2
언제부터 나는 달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달을 보며 포효하던 내 울음소리는 이젠 없다
불임이다, 제 아무리 생명을 주사하여도 나는 더이상 생산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생산적인 몸에서 아무 것도 낳지 못한다는 것은 주검 그 자체다
내 뼈는 이미 검게 그을려 가고 있다
고독의 수치가 높아갈수록 살들은 돌아올 수 없는데
해질 녘이면 내 안을 빠져나가 검은 소리를 낳고 돌아온다
가끔은 머얼리 나가 있기도 하지만 그 때엔 깃털 하나 남겨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검은 순결함, 내 속에 까마귀 한 마리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