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 김경주,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사진은 제 자취방입니다^^
wintertea
2007-06-11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