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복사꽃 피는 날
유치환
한풍은 가마귀ㄴ양 고목(古木)에 걸려 남어 있고
조망(眺望)은 흐리어 음우(陰雨)를 안은 조춘(早春)의 날
내 호젖한 폐원(廢園)에 와서
가느다란 복숭아 마른 가지에
새빨갛게 봉오리 틀어 오름을 보았나니
오오 이 어찌 지극한 감상(感傷)이리오
춘정(春情)은 이미 황막한 풍경에 저류(低流)하야
이 가느다란 생명의 가지는 뉘 몰래 몬저
열 여듧 아가씨의 풋마음 같은
새빨간 순정의 봉오리를 아프게도 틀거니
오오 나의 우울은 고루(固陋)하야 두더쥐
어찌 이 표묘(漂渺)한 계절을 등지고서
호을로 애꿎이 가시길을 가려는고
오오 복사꽃 피는 날 왼종일을
암(癌)같이 결리는 나의 심사(心思)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