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을 위하여 나는 모릅니다 이 새벽에 몇 날을 이 자리에 그는 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하지만 딱히 묻지 않아도 나는 알겠습니다 저이가 가진 말쑥함은 어쩌면 위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보입니다. 저이의 가슴 속 주머니엔 그가 수 십년 아내에게 밥을 얻어먹고 아이들을 잘 자라게 만든 요술 망치 한 자루 들어있다는 것을. 보세요. 빼꼼 머리를 내민 망치가 보이나요. 세월만큼 자란 망치는 제법 잘 숨을 줄 압니다. 저이가 필요할 땐 건장한 체구로 뚝딱뚝딱 일을 해낼 것이고 저이가 퇴근길에 술 한 잔 하게 될라치면 젓가락도 되었다가 가끔 쓰다듬는 쑥쓰러운 아내의 엉덩이도 되었다가. 제가 봤다니까요. 이래뵈어도 우린 몇 번 한 팀이었습니다. 저이는 묵직한 망치처럼 말이 별루 없습니다. 저이가 몇 마디를 한다해도 그 소리는 뚝딱뚝딱 그렇습니다. 모두들 그가 수십년 그의 우주에 아무 탈없이 살 수 있었던 것도 저 침묵덕이라고 합니다. 이제 그가 하루살이 일일 노동자임을 아셨다면 이 새벽 자기 별에서 가져온 작은 물 한 병 들이키고 시지프스가 되리라는 것은 잘 알 것입니다. 어떤 시지프스는 침묵이 무슨 소용이냐며 까불까불대다가 먹지도 못하고 간까지 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나는 시지프스일까요.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매한 질문이니까요. 누가 대답이라도 할 만큼의 소양을 가졌어야 말이죠. 하지만 저이는 다릅니다. 우리들 중 가장 위대한 시지프스이니까요. 저이를 보세요. 벌써부터 머리를 내민 망치의 머리에서 빛나는 아우라를요. 지구 멸망이 몇 년 안 남았다고들 하지만 우린 저 망치를 믿어야한다니까요. 알고보면 저런 망치를 가슴에 숨기고 다니는 저이 같은 시지프스들이 허드레일을 하면서도 껄껄껄 웃고 있다니까요. 우리 같은 이들은 알아요. 안다니까요. 저 망치들이 어느 날 한 곳에 열 두 명 혹은 열 세 명 동시에 모여 남이 아닌 우리로 하나의 못을 박는 날을 기다려보자구요. 이봐요 이봐요 종점이네요.
알섬
2007-04-13 0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