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동(文龍童)
묘역번호: 2-33
생 애: 1953.09.16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기 타: 학생(호남신학대학교 4학년)
유 족: 문근재(형)
이 엄청난 피의 대가는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
이 엄청난 시민들의 분노는
어떻게 배상해 줄 것인가
도청 앞 분수대 위의 시체 서른두 구
남녀노소 불문 무차별 사격을 한 그네들
아니 그들에게 무자비하고 잔악한
명령을 내린 장본인
역사의 심판을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
전대 부속병원 영안실의
시체, 시체들
병원마다 꽉 메인 총상환자들
칼빈 소총과 M1으로 무장하고
눈이 뒤집어진 시민들의 차량의 돌진
완전히 폐허 같은 금남로
전소돼버린 문화방송국
앙상한 골재만 남고 타버린 수많은 차량들
이 엄청난 피해의 현장
누가 이 시민에게 돌을, 각목을, 총기를 들게 했는가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 이럴 수도 있는가
우린 참여하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계엄당국의 엉터리 같은 오도
불순분자들의 난동이라니
그럼 내가, 나도 불순분자란 말인가
대열의 최전방에서 외치고 막고 자제시키던
내가 적색분자란 말인가
우린 후세에 전 국민에게
광주사태가 몇몇의 불순세력에 의해 자행된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공수부대의 만행에
분노한 선량한 시민들의 궐기임을 알리고
증언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전 시민이 빵과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르는
광경이 적색, 폭도란 말인가
뭔가를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줘야 한다
나의 불참이, 나의 방관이, 외면이
수습을 더 늦게 지연시키는 것이다
의롭게 살고자 5.18민중항쟁에 적극 참여했던 문용동이 남긴 1980년 5월 22일의 일기 속의 글이다. 그는 당시 호남신학대학에 다니던 신학생이었다. 자신의 신앙에 누구보다 충실했으며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고 있던 청년이었다...
총기를 회수하여 계엄군에 반납하는 것은 그동안 시민들이 흘린 피를 헛되게 하는 항쟁의 포기라고 여기는 이들과 총기를 반납하고 계엄군과 협상을 하려는 세력과의 분쟁이 있는 가운데 하나둘씩 모아지는 총기의 관리가 필요했다. 문용동은 도청 지하실에 배치되어 무기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글 속에서 말하듯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헬기의 선무방송을 듣고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나섰던 그들은 자동소총에 맞았다. 앞장섰던 문용동이 가슴에 3발의 총을 맞고 먼저 쓰러졌고, 김영복은 파편에 맞아 정신을 잃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