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실에서는 점차 분필(백묵)의 낭만이 사라져가고 있다. 백묵 대신 소위 물백묵이라는, 액체주입식 신종필기구를 사용한다. 그 놈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 있는지 없는지, 학교에서는 그냥 대충 자연스럽게 '물백묵'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운다. 그런데 그 놈은 사실 '백묵'이 아닐 뿐 더러, 더우기 '물'은 절대 아니다.
풀풀 날리던 분필 가루가 사라졌다고, 대체로 선생님들은 좋아라 하신다. 아무래도 눈에 확 띄는 석회가루에 비해, 사용 중 별반 눈에 띄는 것이 없는 신종필기구가 더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몇십년동안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백묵을 버리고, 아직 그 정확한 유해성을 도저히 알 길 없는 정체불명의 도구를 그리 쉽게 함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나는 여러가지로 참 못 마땅하다.
설사 그 놈이 결코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고, --- 늘 거시기한... 그 뭣이냐...--- 식품(?)안전 어쩌구 하는, 관계기관의 확실한 보장이 있다손 치더라도... 어차피... 열심히... 뼈 빠지도록 수행하는 학생들 몸땡이에, 기똥차게 유익한 산삼녹용명약 수준이 아닌 바에야... 나는, 내 마음 속에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처럼... 그 놈이 아무래도 백묵만 못하다...는 아쉬움이 남아 맴돈다.
무엇보다... 그 놈은 사용하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칠판에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필기구의 잉크나오는 부분이 하늘을 향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그 구속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위대한 중력 때문에... 필기구 내부의 잉크는... 자기가 나가야 할 머리쪽으로 상승하지 못 하고, 자꾸만 꽁지쪽으로 밀려내려온다. 결국... 좀... 쓰다 보면 기어이 그놈은... 의당 실행해야 하는 적법한 노동행위를 완강히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뼏대는 그 놈을 아기달래주듯... 곱게 뚜껑 덮어주고... 위아래 방향으로 대차게 흔들어줘야 한다.
모든 수업시간에... 교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숙한 빠텐더처럼 그놈을 수시로... 흔들어댄다. 별반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또렷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그런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참으로 보기 드문... 진풍경이 아닐 수 없으리라. 침 튀기며 설명하다 말고, 들고있는 필기구를 아래위로 마구 흔들어대는 모습은... 얼마나 가관이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졸지에 교사가 빠텐더로 전업해야 하는 경우, 그 놈의 근거없는 필기노동거부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매끄럽게 이어져야 할 수업의 흐름이 너무나 자주 무기력하게 끊겨버린다는 점이다. [--- 낡은이답지않게 자꾸 투정만 부리는 것 같아서,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