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할 때 끄집어 내는 사진
2002.12.29
Daewoo Spirit호 브릿지에서, Alaska.
Fuji Finepix 4900z
Photo By Capt. Jeon
마음이 답답하고 공연히 걱정거리만 쌓이게 될 때,
나는 이 사진을 들여다 본다.
아버지께서 정확히 40년간의 바닷생활을 마치는 마지막 항해의 귀환길에 만나셨던
엄청난 폭풍이 지난 후의 사진.
당시를 떠올리시는 아버지께서는 늘 "정을 떼려고 그랬는지...참 그런 고생이 없었다.."라고,
그 날을 떠올리시지만, 200만화소짜리 작은 디카로라도 그 대단원을 담아두신 것이 다행이라고도
전해주셨다. 모든 선원들이 함교에 모여서 구름이 물러가고 나타난 일몰 앞에 감격해했다니...
언제나 눈으로 만나는 것과 사진으로 만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나도 이 사진을 바라보면 늘 마음을 돌이키게된다.
저 행복한 한때나 백열처럼 뜨거운 한낮이나
아마빛의 갈라진 틈이 있는 어둡고 끝이 없는 밤
이들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하고 언젠가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확실히 이 세상을 믿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들도 풀잎을 애무하고 그대를 사랑하며 속삭이고
석양의 어둠 속에서 소리을 죽이고 꿈을 꿀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문득 만난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고
그 이름이 불리면 뒤돌아볼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들고 구름을 볼 것이다
역시 기쁨에 떠는 연인들이 있고
두 사람의 첫 여명이 될 아침이 올 것이다
역시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빛이 떠돌 것이다
지나가는 나그네 말고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하늘이 순간적으로 아주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으로는 아직 뛰어남이 다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그 가슴에 품고 있는 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진실로 나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은 거의 짧은 순간에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생명은 술잔에서 넘치는 술처럼
넘쳐 흘러간다 기쁨과 고통이 되어
바다도 우리들의 갈증을 다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또 비록 가혹한 시대가 온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척추가 있는 무거운 푸대로 태어나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또 입언저리를 비트는 깊은 고뇌가 있다 할지라도
나도 또한 평생 도둑의 지식처럼
저 가슴을 에이는 고뇌를 안고 왔다 할지라도
그 고뇌하는 여우에게 심장을 물어뜯겨
잠 못 이루는 밤, 전쟁, 불의와 부정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주의나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로
다른 사람들을 가둬넣고 억지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저 무서운 권모술수나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비웃는다거나 중상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밑빠진 우물과도 흡사한 저주받은 날들이 있다 할지라도
증오를 응시하고 있는 저 끊없는 밤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며
쇠고랑을 휴대한 괴뢰와 적들이 있다 할지라도
수상쩍은 도당을 만든 놈들이 던지는
저 얼토당토않는 잔인함과 너절한 짓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우스꽝스런 사상을 지지하며 악담을 퍼뜨리고
여전히 뻔뻔스런 자들이 어떤 혹독한 짓을 고안해낸다더라도
이 지옥의 모든 악몽과 상처와
생이별 사이별(死離別)과 모욕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또 바보 같은 신앙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사람들이 여지껏 기도하고 희원했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말하리라 이 인생은 훌륭했다고
나는 이 곳에서 말을 걸고 나에게 귀를 기울여줄 사람에게는
입술에는 다만 감사하다는 이 한 마디를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이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루이 아라공 -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BGM : Opus - Walking On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