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소진한다.
아무것도 아닌 우연의 흔적을 오랜시간이 지난 서로의 과거 속에서 만난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잘 모른다.
간혹 아내에게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
아내가 무엇인가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복잡하게 했다.
이런 생각도 했다.
그것은 아내가 나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으며 일종의 배신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적막한 바닷가에 파도가 부서진다.
이제 가끔씩 아내의 얼마 남지 않은 낯선 모습을 만날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며 아까워진다.
내가 점점 아내를 소진해간다.
알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
끝까지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까.
늘 아내에게 신비스러움을 간직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그러기를 부탁할 필요는 없다.
아내는 의도하지 않는 중에 나에게 충분히 새로우며 신비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가 늘 신비스럽기를 원하면서도 아내의 새로운 모습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그 새로운 모습들을 내 머리 속에 각인하고 또 더 새로운 것들을 아내에게 요구한다.
아내는 다양한 것들을 꿈꾸는 여자다.
내가 질리지 않고 또한 보채지 않을 만큼의 양을 적당히 배분하여 공급한다.
아내는 나를 깨닫게 하며 웃음짓게 한다.
아내의 일상 속에는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해답들이 내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