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9 마음의 안정을 취하라는 것인지 녹색테를 둘렀던 고용보험수급 수첩이 희망을 담기라도 한 듯 등대가 그려져 있습니다. 참말이지 이 눔의 세상이 미쳐 돌아갑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뭐 빠지게 열심히 일해온 세월이 21년하고도 4개월입니다. 그 시간이 억울해 못 놀고 또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 6개월도 못 하고 나와서 받는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희망카드"는 난장이를 만듭니다. 직장을 나가지 않게된 날 초등학교 딸내미가 방과 후에 돌아와선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합니다. 그냥 웃어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놀러나갑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돌립니다. 다행히 아내는 직장에서 늦게 오기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퇴직금과 기타 것들로 2달의 월급은 집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 희망 카드 " 첫 장에 작은 눈으로 깊이 들여다봐야 보일 글씨에 "신념이 있는 한 기회는 있습니다"라는 말은 확 수첩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을 충동을 줍니다. 언제고 신념이 없던 날이 있었냐고 자문해보면 평소 조용한 내 가슴에서도 불이 일고 눈에서 핏발이 섭니다. 이 문구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둔 말들이 참 많이 달려있습니다. 아주 응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신념은 정치가들이나 단물 빨듯 즐겨쓰라 던져버릴랍니다. 답답해서인지 점 같은 것 보지 말라던 아내가 점쟁이라도 찾아가라 합니다. 답답도 해서 내 사주도 넣고 아내와 아이들 사주를 넣으니 무조건 좋답니다. 지금도 잠깐 놀 뿐이지 곧 일을 골라 갈거라 합니다. 기분이 좋아야할텐데 그냥 그런 것을 보면 내 맘은 아니지 싶습니다. 미심쩍은 내 얼굴을 보기라도 한 듯 점쟁이가 쉰 넘어 편하게 산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 동안 일했으면 몇 달만 편히 놀라 합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에 잘 나가는 아내가 있으면 잠깐 논다고 굶어죽지 않는다고 편히 놀라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철인 사람에겐 이 실업급여 카드 조차도 없으니 나더러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위하라 합니다. 뭘 먹어도 구토가 일어나고 새벽엔 오줌발도 서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에 수북한 것은 흰머리 십 년을 더 먹어버린 기분입니다. 오늘 처음 구직 활동을 확인 받고 기입한 취업희망카드. 힐끔 쳐다보며 힘없이 웃어주는 후배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나마 술 권하는 사회에서 후배는 차를 권합니다. 술도 때를 알고 마시는 것이지만 술 보다 차를 권하는 후배의 마음이 곱습니다. 다음 주면 또 한 줄의 구직 활동을 확인 받으러 갑니다. 후배가 수첩을 뒤적이다 헛웃음을 합니다. "고용 보험 수급도 자격증이네" "참 개 같은 ......"
알섬
2007-03-18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