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하나, 아마도 봄때문이지 이른 아침 남편은 두 번의 알람 소리를 들어서야 일어납니다. 베란다에 서린 자욱한 아침을 확인하고 우유 한 잔 감사히 받아들고 차비 보다 조금 비싼 번호를 확인하고 버스에 앉습니다. 서울까지 한 시간 15분. 혹시 오늘은 남편이 따순 밥 한 그릇, 잘 닦아놓은 빛나는 구두, 노트북이 든 제법 묵직한 가방을 손에 쥐어주는 아내를 기다리지는 않았을까요. 아내는 이 모든 것을 챙겨주지 않았지만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남편의 출근하는 등을 베란다에서라도 바라봅니다.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약한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기에도 버거운 날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외식도 많이하고 가족끼리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그것도 한 때라고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두 무료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부부 전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를 일러 늦게 찾아온 권태기라면서 늦둥이를 가져보라 권하기도 합니다. 시계를 보니 큰 아이 유치원 보낼 시간은 두 시간도 넘게 남아있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늦게 보낸 덕인지 큰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 가방도 챙기고 인사도 밥 먹는 것보다 더 빠르게 하고 나갑니다. 큰 아이를 바라보는 아내는 두 번째 일어남에도 무거운 어깨 돌리기를 하고 길다란 하품에 기지개까지 폅니다. 신호등을 무사히 건너겠지. 가물가물 눈이 감깁니다. 해는 벌써 베란다에 스미고 아홉시가 넘은 시간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며 아침을 준비해도 늦을 시간에 아내는 다시 이불을 덥습니다. 마흔 하나. 어쩌면 나이때문이 아닐까 자문하며 이러지 말아야지 이러지 말아야지 하다가 둘째를 가슴에 넣고 잠이 듭니다. 그리고 세번째 일어남은 큰 아이가 돌아올 11시 30분이나 돼야지 합니다. 그나마 큰아이도 길들이기를 잘 해서 다른 아이처럼 엄마 손을 잡고 퇴원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레이다인 베란다에서 지켜보고 있을거라는 믿음을 주었기때문입니다. 한편, 봄눈이 겨울처럼 내린 아침. 남편은 버스가 종점을 향했을 때 비로소 창 밖을 봅니다. 봄눈입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그의 눈동자엔 아내와 두 아이가 담겨있습니다. 자기도 몰래 한 주먹을 불끈 쥡니다. 밋밋한 일상에 서둘러 손전화를 꺼내들고 문자를 보냅니다. "어이~ 눈 오네. 일어났는가" 아내는 문자 오는 소리도 모르고 잠꼬대까지 하며 잡니다. 어제 둘째 아이 야단 친 내용이 정말 실감납니다. 한참 그녀가 잠 속에 있을 때 둘째가 품 속에서 나와 웁니다. 녀석도 꿈을 꾼 모양입니다. 그 아이를 달래기 위해 가슴으로 더 잡아당겨봅니다만 이내 빠져나갑니다. 베란다에 선 둘째아이의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눈, 눈와요" 그제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아내는 미리 와있는 문자메세지에 하품에 미소를 담아 기지개를 폅니다. 세 번의 아침 기상입니다. 아차, 큰 아이 올 시간이구나. 서둘러 쌀을 씻고 버섯이며 된장국을 끓입니다. 그리고 둘째 우유 데워 먹이고 사과 한 알을 잘 씻어 입에 뭅니다. 얼마 전 부터 위와 장이 별로 좋지 않아 무엇을 먹는 일이 버거운 데 사과 한 알 베어물면 아침에 금이라는 말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기때문입니다. "엄마~ 눈, 누운." 아내는 재촉하듯 말하는 둘째의 말을 듣고서야 베란다 앞에 섭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서 오가지도 못한 채 땅으로 하강하는 눈을 보며 유리창에 비춰진 얼굴을 확인합니다. 반쯤 묶은 머리에 후줄그레한 옷. 푸석한 얼굴이 안스럽습니다. 내 나이......마흔 하나......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남편입니다. "아직도 잔가, 일어났는가. 눈 온다고 메세지 보냈구만" "... ..." "잔가, 으응, 일어나, 일어나소" "알았어!" 한동안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등 뒤에서 둘째가 우유를 마시면서 달려옵니다. "엄마 나 인어공주, 인어공주 볼래요" 귀찮기도 하고 남편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끊은 자신이 무척이나 밉습니다.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맞춥니다. 오늘따라 힘겹게 맞춰집니다. 둘째는 소파에 드러눕듯 앉아 만화영화를 봅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하다가 아침을 먹고 생각해보자합니다. 햇살은 점점 길게 혀를 내밀고 거실로 들어옵니다. 오후에 차 한 잔이 생각 날 때 전화해야지 생각하지만 이러다 잊어버립니다. 저녁엔 아무렇지 않은 듯 남편은 들어와 씻고 약간의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을 것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 한 잔 혹은 맥주 한 잔에 히이 하고 웃어줄 것입니다. 겨우 남편 하나, 아이 둘인데, 마흔 하나 아내는 버겁기만 합니다. 아마도 봄때문이지 싶습니다. 이 지독한 봄을 어찌 앓아야할 지 마음만 시끄럽습니다. 그냥 봄에게 맡겨야겠습니다, 리모콘.
알섬
2007-03-11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