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골목에 봄은 왔는데 겨우내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시길 여러 날 드디어 장 담그는 날이 되었다. 음력 표시가 있는 달력에서 말(午)날에 붉은 동그라미를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총기가 남다른 엄마는 확인 차 해놓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한 해 내지 몇 해 된장과 장이 맛나려면 정성을 다해야한다면서 이틀에 걸쳐 쑤어놓은 메주를 말갛게 목욕시키고 3월 1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맛나게 해달라고 비나리를 하셨다. 다행히 빛이 쨍하니 비춰주는 옥상에 엊저녁 타놓은 간수를 붓고 나니 네 독이 채 못 된다. 엄마의 계량법으로 물과 몇 년 묵은 소금이 잘 조화되어 오백원 동전만하게 달걀의 얼굴이 빼꼼 떠오면 알맞게 간이 맞는다더니 정말 귀신처럼 맞아떨어진다. 엄마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옥상으로 큰 통에서 잘 간이 배인 간수를 갖다 붓고 엄마는 거기에 대추와 숯, 붉은 고추를 넣으셨다. 그리고 잠시 쉴 것도 없이 자신에게 부어질 간수를 기다리는 메주를 위해 간물을 서둘러 탔다. 이번에도 귀신처럼 오백원 동전만하게 달걀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러기를 다섯 차례를 넘게 한다는데 세 차례만 보고 집으로 와야해서 죄송스럽다. 그럼에도 엄마는 너로 인해 큰 힘이 되었다며 서툰 일 솜씨를 다둑여주셨다. 처음엔 우리 것만 담지 그러냐며 힘에 부치는 일이라 말씀 드렸지만 메주를 만드는 일에는 마음만 동참하고 메주 씻기부터 간수 만들기와 간수 붓기까지 하면서 참 재미난 일이지 싶어 엄마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엿새 동안 무엇을 했을까. 밤잠을 설치는 엄마의 코고는 소리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괜시리 엄마에게 부탁한 친구분들이 미워지기도 했지만 엄마의 해맑은 마음으로 빚은 장, 된장과 고추장이 여러 사람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리 서운할 것은 아니지 싶다. 다만 메주 만들 때 콩을 씻어서 찧고 메주를 예쁘게 만드는 과정에서 과로한 탓으로 치아가 많이 손상되었고 하는 수 없이 남의 치아를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 생겼으니 딸마음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상행선에 올라 하염없이 흘린 눈물때문에 씨렵고 부은 눈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지하철을 타서 집으로 왔다. 어떻게 왔는 지 알 수가 없다. 가방 여기저기에 꼬깃꼬깃 새돈이 말려있고 오곡밥을 해먹겠다는 말을 잊지 않고 팥과 콩, 마른 호박나물을 챙겨주시고 봄에 덮을 이불까지 챙겨주셨으니 눈물은 가슴으로 뜨겁게 타들어간다. 누군가 부모는 자식의 웬수였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받으며 나도 말을 흘린다. 가끔 생각해보면 부모나 자식이나 모두 다른 별에서 와서 가족이란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고. 하루가 지나면 치아의 절반을 빼야하고 한 삼사일은 헛니도 없이 지내야하고 헛니가 나와도 틀니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치아보다 가슴 한 쪽이 문드러지지 싶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으니 염려마라시는 엄마를 뒤로 하고 눈물이 흘러 한 번 꼬옥 안아주고 오지 못해 가슴뼈가 멍이 든 듯 싶다. 두 어달 치료를 해야한다는 데 그 사이 엄마의 골목에 지금 두 송이 몸을 연 동백과 함께 나머지 것들이 모두 붉게 물들여도 행여 넘기실까 염려된다. 분명 엄마의 골목에 봄은 왔는데 말이다.
알섬
2007-03-02 0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