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걸(黃鎬傑)
묘역번호: 2-13
생 애: 1960.10.07 ~ 1980.05.23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지원동 화순간 도로상
기 타: 학생(방송통신고 3학년)
유 족: 황길현(부)
며칠씩 돌아오지 않고 있던 호걸이 21일 밤이 늦어서 총 한 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가족들은 총을 든 호걸을 보고 더럭 겁이 났다...
“나도 사람들하고 데모했어라. 아부지, 전두환이를 몰아낼라믄 우리도 총이 있어야 써라. 저놈들은 더 좋은 총으로 우리를 막 죽인디 우리는 그냥 당하고만 있으라고라?”
황호걸은 시신을 확인하러 오는 가족들을 안내하며 처참하도록 일그러진 시신들의 몸을 닦아주는 일을 맡았다. 피와 오물로 뒤범벅인 채 썩어가는 시신들에 비위가 뒤틀릴 법한데도 호걸과 다른 학생들은 그저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으로 정성껏 시신을 닦아주었다...
넘쳐나는 시신으로 관이 부족했다. 광주에서 퇴각한 계엄군이 시 외곽에 주둔해 있어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이 땅의 민주의 제단에 바쳐진 애처로운 넋들을 관에도 넣지 않고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관을 마련하기 위해 황호걸을 포함한 몇몇의 학생들과 시민군들은 작은 버스에 함께 타고 화순을 향했다...
그들이 화순의 입구인 지원동에 도착했을 때, 매복해 있는 군인들은 그 버스를 향해 사정없는 일격을 가했다. 총격전이 벌어졌다. 시민군은 보이지도 않는 군인들을 어쩌지 못했다...
“내가 우리 아부지 성격을 받았는디, 그놈이 꼭 나랑 같어. 내 맘에 맞지 않으믄 그냥 확 일어나는 성미라서 나를 감시허는 형사도 겁나게 힘들었을 것이여. 그래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제. 아닌 줄 알면서도 그냥 있으믄 그것이 사람인가?”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동하시다 국가유공자로 현재 국립묘지에 안장된 황병학 선생의 아들 호걸의 아버지 황길현 씨는 그렇게 삼대가 불의에 응하지 않고 정의를 지켜온 것이 자랑스럽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