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철(張在喆)
묘역번호: 2-08
생 애: 1957.11.13 ~ 1980.05.23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지원동
기 타: 이발사
유 족: 김점례(모)
가정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걱정하던 큰아들 재철은 공고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어머니의 힘이 되어주었다. 그해 5월에 재철은 좀 더 돈을 벌어보겠다고 외국으로 나간다며 서류접수를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친구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들의 친구들은 재철이가 워낙 빨라 날쌘돌이라고 불린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광주 밖으로 나갔다가 못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는데 재철이도 분명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아들 친구들 말에 불안한 마음을 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들 친구들과 몇 군데를 더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이 소란스러웠다.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예감은 그대로 사실이 되고 말았다...
계엄군이 잠시 광주에서 퇴각했을 때 시민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꾸려 혼란을 수습하고자 했다. 장재철은 수습대책위원으로 의료반에 편성되었다. 외곽지역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하고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를 도청으로 옮기는 차량을 운전했다.
23일 밤 9시경 지원동 벽돌공장에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차를 운전하고 그들을 후송하기 위해 지원동으로 갔다. 그러나 매복해 있는 군인들이 밤에 지나는 차를 그냥 둘 리 없었다. 방향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든 총알세례를 당한 그는 그날 생을 마감했다...
아들을 보낸 그해 8월, 아버지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어쩌면 어머니 힘들게 하지 말고 자기와 편히 지내자고 아들이 데려간 것이 아닐지. 그러나 마음의 기둥이었던 두 사람을 잃은 어머니를 세상은 그냥 두지 않았다. 또 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것이다...
별의별 설움을 당하며 의지할 곳 없는 장재철의 어머니에게 힘이 되어준 이들은 친동기간보다 각별한 유족회 회원들이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서로를 위해주며 버팀이 되어준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