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ice
베니스 여행은 일개 도시가 아닌 비잔틴 제국의 면모를 들춰보는 일만으로도 유쾌한 감흥에 젖게한다. 그 옛날의 몇몇 수도원은 갤러리나 예술학교로 바뀌어 있고 바다 위에 박은 기둥에 의지해 위태로운 듯 서 있는 고풍스런 건물 1층은 아기자기한 상점으로 탈바꿈했지만 ,그 수많은 변모의 과정 역시도 제국의 '스타일'을 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느끼게 된다.
한때 베니스는 유럽에선 독점적으로 동양과 무역을 했던 도시로서, 11세기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힘과 부를 얻는
최고 전성기를 누리게도 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 당시 지중해 지역은 물론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제국에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으니 베니스는 일개 섬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제국이었던 것이다.
제국의 영화가 지나간 베니스를 지금에 이르러 다시 '축제의 제국'으로 부른다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다.
금사장상을 상징으로 하는 8월의 베니스영화제가 그렇고 아울러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계속되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1872년에 처음 시작된 베네치아 곤돌라 축제(매년 9월 첫째 주 일요일)는 베니스를 일년 내내 축제의 흥분 속에 들떠 있게 하는 충분한 증거들이다.
물, 유리, 레이스, 가면, 곤돌라, 광장. 베니스를 수식하는 이런 말들이 아무리 베니스 여행을 결심한 당신 가슴에 미리 떠다닌다 해도 정작 베니스의 아름다움은 베니스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다. 비좁은 골목과 골목을 지나고 좁다란 운하와 운하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가, 산 마르코 광장에 쏟아지는 햇빛을 피하기위해 가면을 꺼내드는 그 순간, 당신은 어깨에 실린 모든 짐들을 벗어버리고 세상의 만져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향해 손을 뻗고 싶을 것이다.
- 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