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 자리 2
헌병이 다가온다. 육교 위에서 만난 헌병은 계단을 내려가며 힐끗 쳐다본다. 오후 6시쯤 되었을거다. 겨울의 오후는 짧고 순식간에 불을 지핀다. 또 한 명의 헌병이 슬슬 다가온다. 5.18. 80년 그 여름에 만났던 그 헬맷때문에 물어보기도 전에 미소를 먼저 만든다. 카메라를 본 것이다. 길다란 삼각대를 어깨에 매고 온통 까맣게 입은 한 여자에게 당당한 발걸음으로 와 묻는다. 여긴 군사시설인데 혹시 저 사람이나 이 근처를 찍으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모기만한 소리로 크게 말했다. 그들은 자리로 돌아갔고 서둘러 양철지붕을 휘돌았다.
양철에 붉게 흘려쓴 공사측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내게는 왜 5.18 그 날의 벽들에 씌여진 붉은 글구들로 보였을까. 못 본듯 했지만 자세하게 길다란 글씨는 가슴에 박혔다. 흠. 공사가 중지된 이유. 그리고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공사측. 개소리가 나는 쪽으로 사람 하나가 부산나게 움직인다. 개들의 움직임보다 더 빠른 그 사람은 마침 개먹이를 위해 온 듯 싶다. 힐끗 쳐다보다 행여 말이라도 시킬까봐 개소리 속으로 파들어갔다. 그리고 낯선 남자. 얼른 봐서도 현장 사람임을 알리는 때묻은 청색 잠바차림의 남자가 무엇을 찍느냐 묻는다. 웃으면서 뭔가를 말했는지 어쨌는 지 그는 뭔가 깊은 사연이 있나보군요 한다. 왜 공사가 중지된 것인가요. 청사진을 본 적이 있는 데 저기 저 아파트 불빛처럼 찬란하던데요. 물론 그렇게 만들어야죠. 아마도 보상이 적었나 봅니다. 보상은 이미 끝났는데...... 무슨 보상이 끝났다는 것인가.
살고 있던 집들과 집기류가 문제는 아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만큼이나 사이좋게 또는 가끔 큰 소리 내며 살았던 그 정들은. 개발과 유지 사이에서 어떤 이는 딱지를 위해 숨어들었고 어떤 이는 월 삼사만원의 월세를 내며 그나마 숨을 쉬며 살았는데. 그들은 없다. 육교 위에서 눈을 잡은 이발관 등과 확성기들. 훵한 그 곳에 그들의 소리를 그들의 모습들이 휙휙 지나간다. 그래도 남은 나무들은 그나마 낫다. 그것만으로도 여기 올 이유는 충분하다. 어둠 속에서 수도꼭지를 본다. 여기도 누군가의 단란한 가정이 있던 자리다.
어둑해지고 손이 시렵다. 무섬증 많은 데도 용케도 취해있었다. 불빛이 더 분명한 그리고 훵하고 자갈 투성이의 길들은 보이지 않는다. 육교를 내려오면서 양철 경계에 씌여진 글구를 쳐다보지 않기로 한다. 전봇대와 머얼리 붉게 타는 문명들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마음 한 덩이 내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