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을 위하여
그때도 그랬다. 떠나는 것에 눈물은 얼마나 많은 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치려고 모자를 습관적으로 쓰고 다닌다. 다행히 그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모자를 좋아하는 이유에 이같은 이유도 얼마쯤은 있을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꾸욱 눌러쓴 채로 발차도 없는 데 거친 숨소리를 내며 늘어진다. 부목을 댄 아픈 오른팔. 손을 들어 안녕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지친 할아버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늘어진 안경과 옷. 퀘퀘한 냄새가 독한 담배냄새와 함께 펄럭인다. 엉덩이가 여러 번 들썩인다. 차창 너머로 볼 것이 많아보였지만 이내 체념이다.
표 검사를 다 한 후에 직원이 유리창을 몇 번 치며 안전운행하라는 몇 마디 말과 안전벨트를 꼭 매라는 주의 사항을 당부하고 차는 허리를 굽혔다. 그때 까지 얼마쯤 걸렸는 지는 잘 모른다. 다만 눈이 시린 것때문에 단단한 비닐로 만들어진 커텐을 주르르 편다. 정오에 가까운 아침 햇살은 따갑게 배꼽까지 쏘아댄다. 제아무리 겨울 햇살이라지만 따가움에 눈이 감길 정도다. 양해를 얻어 문을 열었지만 눈총이 따가워 오래도록 열어둘 수 없다. 잘게 웃으며 안밖을 살핀다.
그 자리. 그 자리에 꼬옥 서있어야했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출발해서 이미 도로로 진입했음에도 내 뒤통수에 붙어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것때문에 뒤통수의 빠개질 정도의 통증은 늘 계속되었고 그가 있건 없건 뒤를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고, 행여 그가 도로로 침입하여 달려오지나 않을까하는 매우 극단적이며 위험한 상상을 하는 걸 잊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중독처럼 버스를 타게 될 때엔 늘 있는 일이다.
한 여자가 누군가를 미행하듯 카메라를 유리창에 붙이고 작은 손떨림을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고 행여 툭 튀어나와 눈물 연기를 할 남자를 찾는 듯 이마를 대었다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썼다가 마치 유리창을 뚫고 얼굴이라도 나갈 것만 같다. 앞쪽에선 왜 떠나지 않느냐며 웅얼웅얼거린다. 한 자리도 비지 않은 꽉찬 버스 속에서 후끈한 기다림이 오래도록 계속될 것만 같다.
"안전 운행 하십시오" 그 한 마디를 듣기위해 멈춰 기다린 시간은 얼마인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발을 떼는 일이다. 떼고나면 그때 그 시간은 감쪽같이 잊혀진다. 상실. 무서운 상실이 있어 다시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