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 자리
저녁을 먹고 가라는 말에도 자꾸만 밟히는 그 곳때문에 삼각대와 카메라 가방을 서둘러 맸다. 그럼 이따라도 다시 오라며 밥 안 먹고 기다리겠노라는 말을 뒤통수에서 자르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묵혀둔 숙제를 하러 가는 발걸음. 다행히 가는 길은 멀지 않았고 불빛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어디론가 들어가버리더니 점점 사람은 없고 차들만 쌩쌩 달린다. 지하철 역에서 한 이십 분 정도 걷는가보다. 해어름에 찾아가는 그 곳. 달리 누군가 마중나와 주지 않아도 훈훈함을 느낄 수 있던 그 곳. 잔설의 흔적이 사람들의 침입을 받지 않은 곳엔 고스란하다. 굿당의 불빛이 희미해서 하마터면 그 곳으로 빠져버릴 뻔 했다. 멀리 육교가 보이고 왼쪽엔 공사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듯 골판지 모양의 양철벽이 즐비하다. 아 트럭 한 대. 육교 위를 서둘러 올라서니 없다. 없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차악 가라앉았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그들의 흔적은 만나봤을텐데. 아니다. 차라리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스러져가는 사라져가는 암울해하는 모양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떠오르면서 그 많던 사람들과 집들과 골목은 누가 다 해치웠을까 생각하니 상상만 커진다.
서둘러야했다. 겨울의 여섯시는 알맞은 해어름이지만 빠르게 어두워지기때문이다. 후래쉬도 없다. 삼각대 다리를 펴는데 육교 난간 사이에 갸냘프게 솟아난 들풀이 있다. 나무 형상을 갖기도 했고 풀이 키만 쑤욱 큰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찍어보려했으나 흔들림만 남아 접기로 했다. 처음 오렌지 버스를 타고와 내려서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뭐 이런 조그만 동네가 있나했지만 돌고 돌고 찾아 들어가다보니 꽤나 큰 동네다. 육교 위에서 한 눈에 보인다고 쉽게 보았던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작은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그 옆 오락기계에서 오십원이 없어서 어깨 너머로 침만 흘리던 녀석들이 있던 자리, 등 뒤로 빙글빙글 이발소 등이 돌아가던 미용실 겸 이발소, 골목과 골목이 접해진 한 곳에 허름하지만 무엇인가 숨어들기 좋은 그 곳에 살던 여러 마리의 행려고양이들, 작은 마을이지만 굿당과 불당과 교회가 스무개가 넘었던 곳, 독거노인이 많아 독거노인을 위한 쉼터가 있던 자리. 그 '던 자리'를 눈으로 꾸욱 누르며 살았던 사람들과 집들을 그려본다.
없다. 이젠 없다. 그들의 소리는 비어 바람에 가끔 실려올 뿐, 육교 아래를 씽씽 달리는 의정부와 서울의 차들 소리가 더 크다. 전봇대와 자르지 못한 나무 몇 그루와 공사 인부들의 밥집 같은 식당 가건물이 몇 있을 뿐이다. 얕은 눈이 덮힌 그 곳에 보초를 서는 초소의 불빛이 깜빡거리며 존재를 알렸을 뿐, 오뎅과 국수를 파는 리어커 한 대만 알몸으로 겨울밤을 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 삼각대 다리와 두 다리의 흔적이 쉽게 발을 뗄 수 없는 스산함이 밀려왔다. 여길 또 올 수 있을까. 껑충 육교 위를 올라와 돌아오는데 철조망 속으로 낮은 키의 들풀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래 이렇게라도 모여살면 좋았을 사람들인데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나 갔을까. 돌아와도 그 어느 곳도 자리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음을 알고 갔을까. 아마도 어디로 가야하나 이 작은 돈으로 어디로 가야하나를 걱정하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으리라. 살지 않았던 사람이 갖는 황폐함이 이리도 큰데 그들의 한숨소리가 쌩쌩 달리는 차 소리에 더해 웅웅거린다. 그래도 여긴 '던 자리'다.
1950년에 이주해와 55년이 넘도록 이 곳에 살았다던 할머니. 그때나 지금이나 갈 곳은 정처 없고 변한 게 있다면 세월이 흘러 처녀에서 할머니가 되어버렸다던 앞 보이지 않던 할머니. 어쩌면 앞이 보이지 않았으니 보였을 때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이 곳을 지내다 떠나셨겠지 싶다. 꽁꽁 얼어붙은 흙길 위로 하얀 위로가 쌓여있다. 그 많던 사람들과 시공간은 누가 다 먹어 치웠을까. 훗날 여기 살았던 사람이 모르지 않게 나무 몇 그루쯤은 이대로 놔두면 좋겠는데. 적어도 나무 몇 그루쯤은 다 먹어치우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