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구(鄭敏九)
묘역번호: 1-90
생 애: 1955.03.04 ~ 1980.05.22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도청앞 총상후 전남대병원
기 타: 회사원(일신방직)
유 족: 정석진(부)
공장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회사 정문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시위대에 건네주며 서로 격려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변을 당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소문에 걱정이 태산인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밖에서 들려오는 시위대의 함성에 잘 한다며 박수를 치는 자식들의 소리를 들었다. 나이가 스물다섯인 장남 민구야 제가 알아서 하겠지만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인 밑의 두 아들들이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고향 천안 친지 집에 피신을 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다짐을 받았건만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민구는 집에 없었다. 아버지가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자마자 곧바로 광주역으로 나간 것이다. 동생들을 피신시키는 것도 왠지 개운치 않았고, 또 동생들이 몸을 숨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그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광주역에서 시민군의 차에 올라탄 정민구는 시 외곽 순찰을 맡았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새벽까지 순찰을 돌던 정민구는 그날 새벽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어깨를 관통 당한 정민구는 전대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다. 하지만 응급처치 중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광주지방검찰청의 검시 결과에는 그의 사인이 총상에 이은 심장마비로 기록되어 있다...
이웃에서 또는 친구들이 자식들을 결혼시킨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날은 가족들은 더욱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정민구는 일산방직에 다니면서 대전에 사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의 부모님도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날까지 모두 잡혀 있었던 아들이었다. 이제 막 제대하고 시작한 일과, 결혼할 사람이 곁에 있는 정민구의 생활은 의욕에 차 있었다. 날마다 설레는 가슴을 주체 못하겠다는 듯이 헤벌쭉 입을 다물 줄 몰랐던 아들이 변을 당한 것이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