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을 위하여 <떠남을 위하여> 간밤에 산바람 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네. 자네가 급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눈물이 얼어버릴 것만 같은 지난 밤의 추위보다 더 섬칫했다네. 그렇게도 빨리 가고 싶든가. 그 길 말이네. 예순 일곱. 자네가 나보다 세 살이 적으니 맞을게야. 안 사람은 서두르라며 내게 검정 외투와 중절모를 내어주었지. 뜻하지 않게 생생하던 자네가 간밤 서둘러 깬 잠처럼 그렇게 갈 줄 나는 정말 몰랐다네. 저어기 저 너머의 사람도 한 정거장 남은 곳을 향해 서성이는군. 자네도 늘 저렇게 발을 동동 굴렀어. 맞다. 이 모자 자네 모자 아닌가. 작년 이맘때 자네 집을 떠나올 즈음에도 귀가 발개지도록 시려운 날이었어.등산할 때 쓰는 모자는 젊잖은 내 체모에 누가 된다며 아끼든 이 모자를 내게 건네주었어. 딱 일 년 만의 일인가. 종착역과 가까운 곳에 나는 서있네. 하지만 내가 서있는 이 곳은 자네에게 가는 길로는 매우 먼 거릴세.( 여긴 종착역이면서 시발역이라네.) 그럼에도 서둘러 산바람에 싸여 가버린 자네를 만나러 나는 차가운 아침햇살을 안으며 가고 있네. 허허 꼭 볼수록 자네구만. 자네야. 오똑한 콧날에 푸욱 들어간 눈, 살점이 우묵 패인 광대뼈하며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살피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자네야. 이보게 이 몹쓸 사람아. 내겐 한 마디도 안하고 떠날 수 있나. 엊그제 울리다만 번호가 낯설어 받지 않았더니 행여 자네의 전화였든가. 그렇다면 미안하이. 요새 나도 거동이 그리 좋지 않아. 자식들은 모두들 자기 살길 찾아 떠난 지 오래고 안사람마저 말은 없지만 속병이 크게 들어있는 것 같으이. 건강진단 받으란 자식도 없어 억지로 내가 병원 문까지 데려갔지만 허사였네. 병원신세 지는 날 우린 함께 손잡고 죽기로 했다네. 자식들 오래 고생시킬 일이 뻔한데 깨끗하게 우린 죽으려고 하네. 벌써 우린 죽음옷도 커플로 맞춰뒀어. 사실 말일세. 나도 자네가 서둘러 떠난 그 길 가까이에 와있다네. 자네가 먼저 떠나 갔으니 잘 터 잡고 있게나. 세상 여러 복이 있다지만 부부가 한 평생 살고 죽음을 같이 하는 것도 큰 복이라 들었네. 이렇게 칼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 자네처럼 혼자 보내는 일은 없을게야. 여보게. 여보게. 내 앞에 흐릿한 것이 무엇이겠나. 안경 너머 세상이 오늘은 뿌옇구만. 자네 닮은 저 사람을 보자니 울컥 내 가슴이 부서지는구만. 내 자네 손을 잡으러 가는 길이니 조금만 기다려주게나. 조금만. 사람들은 죽는 일을 그리 쉽게 이야기하나 하지만 살았으면 죽는게 이치니 자연에 순순히 따르는 것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나. 남은 시간 아름다히 살면서 당황하지 않고 평안하게 그리 살다 가려네. 그래서 나는 자네를 위해 울기도 하겠지만 오늘 뿐이라네. 비록 의지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갈때엔 그 수고로움을 돌려주는 듯 내 의지로 갈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살라네. 부디 좋은 곳으로 가 편히 쉬게나.
알섬
2006-12-28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