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남(梁會男)
묘역번호: 1-81
생 애: 1950.02.16 ~ 1980.05.22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칼빈 총상
사망 장소: 광주국군통합병원
기 타: 석유판매업
유 족: 김점례(모)
화정동에서 살던 양회남 씨의 가족들은 국군통합병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둔해 있는 계엄군들이 주민들에게 보이는 만행을 익히 보아 왔다. 더구나 5월 21일 도청에서 시민군들의 거센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을 하면서 화정동은 계엄군의 거점이 되었다. 통합병원의 확보와, 송정리 방면으로 통하는 직통도로의 차단을 위해 통합병원 앞의 잿등에는 긴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시민군과 계엄군과의 대립이 더욱 치열해졌다...
22일 오후 5시쯤 집 밖 통합병원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총에 맞은 사람은 국군통합병원에서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방위병이었다. 아직 살아있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누가 모른 척 돌아설 수 있을까? 양회남 씨 일행은 그를 향해 달려갔다... 다시 총성이 울렸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쏟아진 총탄이었다. 맨 앞에 뛰어가던 양희남 씨가 쓰러졌다...
회남 씨의 막내 동생은 등에 업힌 형을 병원의 개구멍으로 밀어 넣고 들어갔다. 그리고 의사를 불렀다. 수술까지 받았으나 회남 씨는 결국 그날 밤에 사망하고 말았다. 형이 죽자, 형의 시신을 모시고 가려고 했으나 국군통합병원에서는 사체를 밖으로 가져 갈 수 없다며 회남 씨를 내주지 않았다. 회남 씨의 이름과 간단한 인상착의만을 적고 막내 동생을 내몰았다...
사방으로 수소문해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몇 달을 보낸 가족들은, 항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에야 보안사로부터 회남 씨가 101사격장에 매장되어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