씰룩거리다
앗! 뜨겁다. 창문을 확 열어 불러볼까. 아니. 미친 놈이라고 욕할지도 모르지. 정확하지 않는데 창문까지 열 순 없지. 아 조금더 앞으로 가면 잘 보일텐데, 근데 왜 내 엉덩이가 씰룩거리지. 신기할 정도야. 참 오래 전 일인데 아마 7년은 된 것 같지. 긴머리, 검정옷을 즐겨입었던 것. 모자를 유난히 좋아했지. 멀리서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빨간 신호등아 참 고맙다. 좀 더 오래도록 버텨줄 순 없겠니. 아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어떻게 하지.
그랬다. 7년 전 여름. 그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기보다는 엉덩이가 씰룩거려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달래기위한 것은 오로지 전화였다. 그때 핸드폰보다는 삐삐가 유행이었는데, 성질이 급한 나는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그때 그녀는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으니까. 별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잘 있었니 별 일 없니가 다구 한참을 수화기를 든 채 숨소리도 죽여가며 그렇게 오랜 침묵이 오고간 뒤에야 맛난 거 먹으라며 곧 보자하던 그 때. 어쩌면 그녀와의 만남이 지역이 다른 곳에 있었던 탓에 보고픔이 곧 씰룩거림으로 온 것이겠지 싶었다.
꼭 닮은 신호등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남자. 버스가 조금 더 앞으로 가 서고 그녀의 모습이 뚜렷해지자 남자는 안심을 한다. 그럼 그렇지 그녀가 저기. 쓸데없는 생각이야. 풋웃음을 흘리며 창문을 열거나 기사에게 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라 여겼다. 성질이 많이 누그러진 것을 그녀가 안다면 어쩌면 내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는 동안 버스는 그녀를 뒤로한 채 바람 소리를 내며 떠났다.
잠시 씰룩거리던 엉덩이는 딱딱하게 온몸을 조여왔다. 습관적으로 떠는 다리를 고쳐보기위해 꼭 끼인 바지를 입고 두 다리를 꽉 붙이는 버릇때문인 것임을 알고서야 베시시 혼자웃음을 웃었다. 그 소리가 들렸는 지 무안함을 달래기위해 뒤를 한 바퀴 돌아볼 때 그녀가 이미 달려가고 있음을 알았다. 어느새 맨 뒷좌석으로 옮겨온 것은 나였을까 아니면 . 그녀만 생각하면서 버스를 탔을 때 늘 한 두 정거장은 되돌아와야했던 것처럼 붕붕 다리가 없었던 때 그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사랑은 기억이 오래간다. 거짓말처럼 먼지를 풀풀내며 시간이 돌아왔다. 잠시만 이대로 멈춰서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군. 씰룩거리던 엉덩이도 천천히 몸을 풀어주고 그녀의 까르르 웃는 소리를 다행히 들을 수 있다.
다시 만나볼까. 근데 이미 결혼하여 사내아이 하나를 둔 나를 만나주기나 할까. 이미 결혼하여 여자아이 하나를 둔 그녀가 만나자고 하면 또 어떻게 하지. 아 이 무슨 사랑타령인가. 그래 그녀. 나처럼 그녀도 가끔 생각할까. 아. 부질없는 일이지. 그럼. 다만 누군가를 오래도록 운 좋게 볼 수 있었고 늘 그랬던 것처럼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하늘 한 번 땅 한 번씩 번갈아보던 버릇을 가진 여자를 본 것이 이 메마른 겨울 낮에 딱딱한 내 몸을 흔들어놓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다시 엉덩이가 씰룩거릴 수 있을 희망이 생겼으니 말이야.
꼭 그녀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참 많이 느긋해졌구나. 아니 천연덕스러워졌구나. 아니 속물이 다 되어버렸구나. 꼭 그녀가 아니어도 된다니. 이봐 죽어도 좋을 것 같던 그 때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봐. 그럼 미안할텐데. 어떻게 헤어졌는지 생각해봐. 근데말이야 그게 생각이 안 나네.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헤픈 웃음 조각을 부쉈다. 손가락 끝이 아파왔다. 잠깐 졸았던거야. 그래. 아주 잠깐. 남자의 아래가 불룩해지면서 어느새 두 손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었고 흥건한 추억이 출렁거렸다. 조금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