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리, emblem
해가 진 것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부근의 버스정류장도 지나친 나는 목적지를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동네를 구경하며 걸었다.
내 앞으로는 붉은 입술의 러시아계 여자와
유난히 배가 많이나온 남자가-옆으로는
스커트 아래로 푸석푸석한 식빵같은 종아리의 여자와
온몸이 먼지로 뒤덮힌 남자가 지나갔다.
한 번은 그들 사이로 긴 생머리의 여자가 길을 물어보기도 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허름한 이발소 문앞에 걸려있는 대형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마주쳤다.
순간 나는 어쩌면 내가 그 거울 위에서 극렬히 날개짓을 하는
집게벌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등에 핀이 관통한 집게벌레.
잠시 기탁했던 기억들이 유리가루처럼 부서졌다.
마정리, emblem
2006,[misty 75'],마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