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무릎 필름을 정리하다 막내조카가 내 어머니의 무릎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포도를 먹던 지난 여름 풍경을 생각해냈다. 네 살에서 다섯 살로 넘어가는 그 즈음에 녀석은 나와 내 어머니의 품엔 거침없이 파고든다. 아이들은 자기를 보호해주는 사람을 잘 알아내서 몸을 맡긴다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녀석도 그것을 알아서인지 오빠와 언니에게 자리를 뺏길까봐서 조용히 엉덩이를 갖다대고는 품 속에서 한참을 비벼댔다. 이리와 보라해도 누구의 무릎이 더 편안함을 주는 지 알기때문에 쉽사리 건너오지 않아 우리에게 작은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이제 칠순에 가까워진 내 어머니의 무릎. 그 무릎에 앉아본 기억은 거의 없어보인다. 대신 아버지의 무릎엔 자주 앉았던 것 같은데 그 또한 희미할 뿐이다. 추운 겨울 이 사진 한 장이 가슴으로 안겨오는 것은 불혹의 언저리에서 세상과 타협도 못하면서 제대로 살아주지 못하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그 딸의 시림때문은 아닐까. 칼바람이 불어오고 옷깃을 세우고 이제는 웅크리고 앉아 어디 좀 쉬어야할 것 같은데 마땅찮은 자리가 없다. 해갈이를 하면서 온것을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어머니의 이름에 세상의 상장을 드리고 어서 그 따스한 젖가슴과 무릎을 한 번 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느 곳에 앉아도 가시방석일지라도 내 어머니의 무릎은 늘 따스하게 데워져있음을 알기에 방자하게도 그 무릎을 한 번 더 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그 어떤 향수와도 비할 수 없는 엄마의 향기. 그 향기와 더불어 비록 뼈가 가벼워졌을지라도 내내 우리를 안아줄 품과 무릎을 그리워하며 엄마향에 취해 스르르르 잠에 취해 단꿈을 꾸고 싶다.
알섬
2006-12-21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