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규(金鉉圭)
묘역번호: 1-73
생 애: 1960.12.27 ~ 1980.05.22
성 별: 남
출 생 지: 고창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학동
기 타: 오토바이 수리공
유 족: 김상규(제)
계엄군이 광주에 진입하여 시위진압을 시작하면서 광주 시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김현규가 일하고 있는 불로동은 시내 근처에 있었고 그 소식이 금방 전해졌다. 김현규는 그 소식을 듣고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5월 20일 공수부대원들에게 잔혹하게 짓밟히던 시민들이 마침내 분노로 떨쳐 일어났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하면서 광주시내에서는 공수부대와 시위대의 공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저녁 무렵 차량시위가 전개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시위대열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두 형제는 함께 시내로 나갔다. 얼마 후 최루탄이 쏟아졌고, 두 형제는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형제들은 곧바로 시위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동생 김상규는 계엄군이 퇴각한 상황에서 시민군들이 타고 다니던 지프차에 탑승하여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24일 경 농성동에 사는 누나를 통해 형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형이 5월 21일 오후 늦게 학동 부근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여 상무관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더 없는 효자였던 형, 더구나 광주로 이사와 형제끼리 곁에서 일을 시작한 지 불과 두어 달 만에 형이 그렇게 시체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동생 상규는 곧바로 도청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민군 기동타격대 제2조에 편성되어 총기를 지급받고 본격적인 시민군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형의 원수를 갚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시민군이 된 동생 상규는 5월 27일 새벽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가 도청 현장에서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