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평(金在平)
묘역번호: 1-72
생 애: 1951.03.03 ~ 1980.05.22
성 별: 남
출 생 지: 완도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국군광주통합병원 앞
기 타: 완도수협 직원
유 족: 고선희(처)
산달이 다가오자 그녀는 먼저 광주에 올라와 쌍촌동에 있는 시작은댁에서 머물고 남편은 완도에서 혼자 수협에 다니고 있었다. 18일에 산기가 느껴졌다. 가톨릭센터 근처의 조중동 산부인과(현 광주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다. 예쁜 공주였다. 귀한 생명을 얻어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완도에 있는 남편 재평 씨였다.
21일이 휴일이어서 재평 씨는 그 전 날에나 광주에 올라올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접고 금남로로 먼저 달려갔다. 광주에서 보건소에 다니는 아내를 만나러 온 다른 직원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 밤에서야 들어왔다. 그러고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5월 22일, 김재평 씨는 집에 돌아와 막 샤워를 끝냈다. 갑자기 밖에서 총소리가 요란해 가족들 모두 바깥쪽에 접해 있던 방에서 뒤쪽 안방으로 피했다. 그런데 그곳까지 총알이 날아들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창을 뚫고 날아든 총알은 김재평 씨의 귀밑을 지나 아래턱을 명중했다. 그는 푹 고꾸라졌다가 거실로 나오려고 다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다시 쓰러졌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다른 부상자들도 실어야 한다며 아내만 따라갈 수 있게 했다. 트럭 안에는 부상자들이 많았다. 군인 아파트에 날아든 총에 맞은 한 여인은 남편이 군인이라며 연락을 해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신음 속에 김재평 씨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군은 그녀를 남편에게 떼내어 집으로 돌아가기를 종용했다. ‘가지 않겠다’고 버텨보았지만 집에 두고 온 젖먹이가 눈에 밟혔다. 남편의 이름과 집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밖으로 나오니 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달빛이 그리도 서러울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야 알았다. 그리고 보았다. 상무대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서너 구의 시체를 보았다. 뻔뻔하게도 그들은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폭도들 때문에 아저씨가 죽은 것이요.”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