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을 든 여자
마음속에 새털처럼 가지런하고도 부드럽고도 차분하고도 얌전히, 체념한 듯 고집불퉁이처럼, 담겨져있는 숨겨져있는 잠자고 있는 그러나 엄연하게 살아있는 그것을 쓰기전에,
우선은 음악을 하나 고르자.
Shaggy - Angel
장정일은 나온지 1년이 지나가는 어떤 소설에서 반듯하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나를 홀리고 가는 바람에- 나는 엉성하게,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
그는 타자기로 글을 쓴다.
나도 예전엔 마라톤 수동타자기를 가지고 편지를 썼었다.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 세 대를 스스로 박살내버렸다.
한번은 잘 자고 있는 노트북을 급하게 흔들어깨운 다음 지면과 수평을 유지하면서 양손으로 단정하게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잠깐 멈추었다가 그대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양손에서 놓여지던 잠이 덜깬 노트북은 갑자기 지면으로 추락했다. 추락하면서 뭐라고 소리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아무런 소리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말 안해준 것 같은데...
아니다. 추락하는 모든 것은 소리 지른다! 다만, 우리들은 그게 소리인지 표정인지 구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보구만 있고 듣지는 못하거나, 듣고는 있는데 보지는 못하거나, 듣도 보도 못하거나... 셋중에 하나이거나, 세가지 모두 다다... 아-무-튼-
인간의 눈높이에서 갑자기 인간의 발앞으로 추락한, 그래서 후다닥 잠이 깬 노트북을 그는 아주 잠깐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오른쪽 발을 들어올려 힘차게 내리 찍어 밟았다. 어쭈!!?? 하면서 또한번 밟았다. 이게!!?? 하면서 또한번. 결국 눈높이만큼 사랑받던 노트북은 그렇게 운명했다.
새로 들여오는 컴퓨터마다 그 종말은 비슷했었다고 전해지는데, 주인 잘 만난 개가 때론 인간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고 믿는 나를 충동질하며 흥분시켰다.
인간이 컴퓨터보다 열등하지는 않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보다... 우등? 월등? 우세? 우수? ... 하여간 컴퓨터가 인간보다 좀 낫다. 어-쨌-든-
장정일은 정확하게 2년마다 소설 한권씩을 써내는데. 그건 자기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술을 끊었다. 대신 얼음채운 유리잔에 콜라를 가득 부어 마신다.
나는 냉장고를 열고 소주 한병을 꺼내고, 야채참치캔을 하나 꺼내고 집안을 휘~ 둘러본 다음 다시 소주병과 참치캔을 냉장고에 쑤셔 넣고 책상으로 돌아온다.
2년마다 소설 한편씩을 쓰면서 늘 술을 마셨다는 장정일을 흉내내려는 건 아니지만, 이건 완전 쑈다! 새벽에 혼자서 빈집에 앉아있다가 쑈를 해보았다. 완죤 쌩쑈다. 혼자서 소주를?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는 절대로 혼자서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건 매우 안좋은 습관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괜한 쑈를 하고나자 다소 의기양양해졌다. 다시 거실로 나가 주전자물을 씽크대에 올려놓았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는 그만 자야하는가, 계속 써야하는가 고민한다. 찻물이 끓을 때까지 생각해보고 결론이 안나면 차를 한잔 마시면서 생각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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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투숙하던 그 날 부터 내 삶의 시간은 비교적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가끔씩 후미진 골목의 이 여관 창문밖을 바라보고 그걸 알아차렸다. 창밖의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빨리, 좀 더 빨리, 더 빨리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나는 저 풍경속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한가지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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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아프다. 머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하루종일 앉아만 있었는데 나는 왜 다리가 아픈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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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풍경속에서 낯선 여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드디어 그 여자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게 아닌가? 결국 그녀는 내 방문을 노크하는 게 아닌가? 나는 미소도 없이 방문을 열어주었던 게 아닌가? 그녀는 인사도 없이 나를 한번 쓰윽 보더니 내 방안으로 들어오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3류소설 나부랭이처럼 낯설지 않아보이는게 아닌가? 3류소설 나부랭이가 아니라면 3류소설의 끄나플일것이 분명한 그 모든 일들을, 나는 지금까지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 기억은 언제 끝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런데 나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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