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金永頭) 묘역번호: 1-68 생 애: 1963.11.05 ~ 1980.05.22 성 별: 남 출 생 지: 영암 사망 원인: 차량사 사망 장소: 광산군 동곡면 하산교 기 타: 알미늄 새시공 유 족: 김봉금(모) 1980년 5월, 귀가 뚫린 사람이면 누구라도 들을 수 있었다. 눈이 있는 사람이면 거리에 쏟아져 나와 두 손을 치켜 든 사람의 물결을 볼 수 있었다. 광주의 시위는 전남 일원으로 퍼져 나갔고, 영암의 터미널에도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몰려든 사람들의 물결이 가슴을 방망이질 치게 했다. 그런데 영두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80년 5월 21일 아침에 집에서 나온 영두는 영암 시내를 돌며 시위에 참여했다. 그리고 광주에서 내려온 시민군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해남으로 갔다. 그리고 해남에서 총과 쇠파이프 등을 가득 싣고 광주로 가기 위해 영암으로 다시 돌아와 신북중학교에 집결했다. 집결해 있던 사람들은 학교에서 하룻밤 묵었다. 다음날 시민군들을 실은 버스와 트럭은 기세도 당당하게 광주를 향했다. 남평 검문소를 지날 때, 매복해 있던 군인들이 총을 갈겼고 영두가 탄 차도 총알이 빗발치는 그 길을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차가 고꾸라지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영두의 숨이 꺼져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지 않는 영두가 죽은 채로 영산포 터미널에 있는 것을 알 턱이 없는 큰형은 오토바이를 타고 영암 주변만 찾아다녔다. 광주에 사는 큰누나와 사촌들은 또 광주의 병원을 뒤지고 도청을 헤집고 다녔다. 사흘이 지나도 시신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거적으로 덮어놓아도 썩어 가는 시신에서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결국 나주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갔다. 경찰서에서는 영두를 질질 끌고 후미진 곳에 묻어버렸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2-05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