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달리 춥더라.
2006.11.24. 23:15
추웠다. 매우.
뼛 속으로 위이잉. 위이잉.
세찬 바람들이 미어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름대로 옷을 껴입는다고 껴 입었는데도 추웠다.
도대체 얼마나 더 껴입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나 추운 날씨였다.
과외를 마치고, 나름대로 지친 몰골로 열심히 지하철로 걷고 있었다.
지하철로 가는 길이 너무 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날이 갈수록 지름길만을 찾아 내는 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걸으며 범어사 1번 출구 지하철 역 계단을 서둘러
내려 가던 때였다.
"누나.누나."
누군가의 어린 남자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누나."
이제는 완전히 내 허리춤에 달라 붙어서 그렇게 불러댄다.
'날 부른 건가'
의아해질 따름이었다.
전혀 내가 모르는 아이였다.
이렇게나 추운 날씨에 회색 츄리닝 정도만 걸치고,
춥지도 않은지,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부름에 내 걸음은 잠시 멈칫해졌고, 내려 가는 속도를 늦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걸음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의 뒷말 때문이었다.
"나 천원만 줘."
"없어."
딱 잘라 말했다. 물론 지갑엔 천원도 있었고,
오늘 과외비도 받았기 때문에 제법 많은 만원짜리도 있었다.
그 동안 이 길을 다니면서 한번도 이 녀석을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오늘 내가 과외비 받았다는 돈 냄새를 맡은 걸까-_-;
"오백원이라도-"
"없어."
"백원은."
"없어. 근데 너 집이 어디야?"
난 그렇게 되물었다.
그 아이는 계속 따라왔다.
나도 계속해서 되물었다.
"넌 춥지 않니? 왜 집에 안가고 이러고 있어?"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집이 어딘데?"
재차 물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단을 다 내려 오자, 다른 대상을 물색하는 듯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찌릿-
웬지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돈 천원. 줄수 있다. 물론.
오백원이고 백원이고,
(이모가 아니라, 누나라고 불러준 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충분히-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을지도 몰랐다..;; )
굳이 팔을 돌려 어깨에 걸친 가방을 내려서 지갑을 꺼내지 않더라도.
백원짜리 쯤은 입고 있던 청바지에 손만 넣어도 얼마든지 꺼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싫거나 미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아이 뒤에서 아이가 받아오는 돈을 지켜 보며,
웃으며 챙겨 버릴 그 얄미운 놈이 싫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앵벌이를 시키는 녀석들이 있다니.
이렇게나 어린데, 옷이라도 좀 제대로 입히고 시키던지.
웬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배고파서 그래? 뭐 먹을 거 사줄까?"
이런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난 멀어져 가는 그 아이를 부르지 못했다.
그냥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그 아이가 재빨리 사라지는 모습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정말 유달리 더 추운 느낌이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도 추운 느낌에 그만 울컥.. 눈물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