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락(崔烈洛) 묘역번호: 1-61 생 애: 1953.07.25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광주교도소앞 야산 기 타: 운전사 유 족: 송귀숙(처) 5월 21일 퇴근길에 계림동에서 친구를 만나던 중 공수부대가 그 친구의 머리를 곤봉으로 때렸다며 일찍 집에 들어 온 남편 최열락은 그날 밤 방에 부엌칼과 각목을 들여놓고 잠을 잤다. 당시 최열락의 가족이 살았던 농성동은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던 경계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최열락을 아내가 나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러나 최열락은 시민들이 너무 많이 다쳤다면서 기어이 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실종신고를 한 이튿날 서부경찰서에 나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서부경찰서 담당 형사는 시댁쪽에서 이북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다면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밤에 이북방송을 들은 것을 본 적이 있느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이북으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차라리 그렇게 넘어가서 살아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맞대꾸를 했다... 최열락의 아버지는 아들이 실종된 지 세 달여 만에 동부경찰서에 근무하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아들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상을 당해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을 다 보여주었는데 그 속에 최열락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들은 몸에 지니고 있던 주민등록증이나 지문채취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들의 사진이었다. 대부분의 사진들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광주교도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되어 있던 시신 세 구를 주민들이 발견하여 신고를 했는데, 그 세 구의 사체 중 하나가 바로 최열락이었다. 그곳에서 옮겨진 사체들은 신원 확인 과정을 거쳐 망월동에 묻었다고 했다. 아내 송귀숙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남편이 집을 나선 지 세 달이 지난 후였다. 그 사실을 조금 전에 알았던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차마 이야기를 못하고 며칠을 그렇게 술로만 보냈던 것이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1-23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