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병(蔡二秉)
묘역번호: 1-59
생 애: 1954.12.29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장소 불상
기 타: 운전사
유 족: 채일병(형)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간 일병 씨 일행은 죽은 이들을 넣어두었다는 곳으로 들어갔다. 모포 한 장 깔리지 않은, 찬 시멘트 바닥에 시체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하나같이 뭉개지고 뒤틀린 얼굴이었다.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사람의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둘러보니, 채이병이란 이름이 써진 팻말이 보였다. 배에 총을 맞은 채 죽어 누워 있는 동생 이병의 얼굴이 보였다. 다행이라고 여겨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병 씨는 배에만 총을 맞아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것 말고는 이병 씨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아침에 집에서 나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이없이 보낸 여인의 충격은 단지 ‘크다’라고만 말할 수 없었다. 뱃속에서 자라던 아이는 엄마의 가슴앓이를 견디지 못해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자신을 기다려주지 못한 아버지를 좇아 함께 길을 떠나고 만 것이다...
동생을 잃고 조카도 잃었는데 어머니마저 가셨다. 더구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사복형사들의 감시는 그를 더욱 옥죄어왔다. 고향 후배를 이용해 유족회 활동을 그만두게 하려고 종용하기도 했다. 풍향동 근처에서 포도농장을 할 때나 다방, 복덕방, 심지어 집안까지 들어와 유족회에 나가지 말라고 간섭하고 협박했다. 농장을 그만 두고 고흥 금산에 내려가 도로공사 현장 감독으로 있을 때는 따라 다니는 형사들 때문에 직장에서 유족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직장에서 쫓겨났다. 경찰서로 쫓아가 의자며 집기를 던지며 항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병 씨는 더 견딜 수 없었다. ‘따라올 테면 한번 여기까지도 따라와 봐라’하는 심산으로 그는 1982년에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건너갔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