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주산지...
11월 6일 경북 청송 주산지에서...
디지털이 대세인 지금, 왠지 필름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록 일주일 전에 현상을 맡긴 사진을 어제서야 받아보면서, 갑자기 민무늬 편지지를 사고 싶어졌습니다.
옛날, 아니 옛날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한 십년 전쯤 나란 인간은 그래도 편지를 곧잘 쓰곤 했지요.
혹시 민무늬 종이에 까만 줄 넓게 새겨진 편지지를 기억하시나요?
누라 뭐라한 것도 아니었지만 오색영롱한 색편지보다 나는 그 민무늬 편지지가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내 책상위에는 민무늬 편지지 한 두 묶음을 곁에 두고 살았습니다.
편지봉투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뉘집 혼사나 상갓집 부조금봉투로 전락한 그 편지봉투 말입니다.
나를 주눅들게 하지 않았던, 다소 촌스럽고 멋없어 보이는 편지지와 편지봉투...
젊은 시절의 아내는 편지지와 편지봉투가 촌스럽다고 한번도 면박을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덕분에 내 악필로 채워진 민무늬 편지지는 다소 촌스러웠어도 제 모습을 찾아 그사람에게 전해지곤 했겠지요.
...... 그래서 두아이의 아빠가 된 걸 겝니다....
집에 돌아오면 깜깜한 방 책상위에 놓였을 하얀 것부터 찾았습니다.
당시 그것은 늦은 귀가를 설레게 하는 소중한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책상위에 민무늬 편지지가 사라졌습니다, 일부러 없앤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대신 키보드 자판과 핸드폰, 그리고 빈 필름통만이 수북히 쌓여있군요.
오늘은 찾은 필름으로 오랜만에 거실에 불을 모두 끄고 집사람, 애들과 함께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스크린에 비치는 사진보단 그림자놀이를 더 재밌어하는 첫째놈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간만에 편지를 읽은 느낌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