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훈(趙大勳)
묘역번호: 1-56
생 애: 1947.02.09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앞
기 타: 상업
유 족: 조승훈(형)
조대훈 씨는 몇 년 동안 건재상에 다니며 열심히 일한 대가로 광천동에 문구점을 냈다. 내성적인 그에게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많은 돈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한 만큼, 사랑하는 가족이 곤란하지 않을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되었다. 그 정도는 바라도 된다고 여길 만큼 그는 성실했다. 덕분에 문구점을 가질 수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렵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뿌듯함에 즐거웠다. 지금처럼만 살면 되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5월 21일, 조대훈 씨는 오전 11시쯤 광천동에서 친구와 함께 시민군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많은 시민들이 ‘계엄해제’를 외치며 잔악한 군의 만행에 분을 토했다. 아주머니들이 넣어주는 김밥이며 빵과 우유로 배를 채웠다. 초라하지만 어떤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만찬이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누문동에서 내리기도 하고 금남로에서 내리기도 했다. 도청까지 가지 말고 그쯤에서 내리자는 친구의 제의를 그는 마다했다. “기왕에 나온 걸음이니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도청까지 나가봐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는 결국 도청까지 갔다...
조승훈 씨는 병원들을 샅샅이 살피고 다녔다. 병원마다 쳐다보기도 힘든 기막힌 환자들이 넘쳐 났다. 차마 귀를 열고 싶지 않은 신음 소리를 들으며 전대병원, 조대병원, 기독교병원을 헤집고 난 후 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조대훈 씨를 찾을 수 있었다. 총탄은 그의 가슴만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총알이 지나간 조대훈 씨의 얼굴은 이미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세상의 시린 바람을 다 막아주고 싶었는데,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지켜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는 그럴 수가 없다. 그는 죄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고 떠난 죄인이 되어버렸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