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묘
지난 새벽 천둥 번개가 일더니 15층 침실 창에 눈처럼 서리가 붙었다
산 옆 아파트라 낮은 온도는 눈이 되어 날리다가 우박이 되어 쏟아지다가
그 때문인지 잠결에 전쟁터 소리를 들었다.
늦은 출근 시간에 앞서가는 두 사내의 양은 도시락에 번개맞은 이야기를 들었다
총총거리며 두 손을 잠바 주머니에 넣고 가는 한 사내는 적어도 오십의 중반인 듯 싶었다
자네 아나 자네 알어 하며 인정하라는 듯 하고 가는 양은 도시락의 비화
가을 한 가운데에서 70년대 초 한창이던 두 사내는 벌써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은행잎에 맞으며
털옷보다 더 두둑한 옛이야기를 따끈한 국물처럼 흘리며 갔다
두 사내의 등 뒤엔 느릿느릿한 걸음의 뾰족구두가 따르고 있었다
은행잎은 샛노오랗게 변화되지 못한 채 설익어 사람들 발 밑에서 허덕이게 되었고
바람은 어느 새 새벽에나 끝났을 튀김집 천막에 둘둘 말려 잠을 자고 있었다
정류장엔 갈 곳 몰라 방향을 결정지 못한 시츄 한 마리가 한 곳만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