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용(鄭燦龍) 묘역번호: 1-53 생 애: 1951.05.30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동청앞 총상후 광주기독교병원 기 타: 상업 유 족: 김금숙(처) 21일,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 패고 끌고 간다는 어수선한 시국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궁금하고 걱정도 되었다. 광주에 올라와 학교를 다니는 집안의 동생들도 걱정되었다. 집안의 14대 종손으로서의 책임과 형으로서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동생들 집을 찾아가 봐야겠다’며 아침을 먹고 나간 그는 정오가 되기 전에 들어왔다... 밖에 나갔다 와서도 별 말이 없었다. 김금숙 씨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안에만 있던 그녀는 별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과일을 몇 개 집어먹고 다시 나서는 남편을 말리지 않았다. 그녀가 시내에서 있었던 계엄군의 횡포와 잔악성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그녀는 남편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 그대로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별 의심이 없었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찬용 씨는 적십자병원에서 발견되었다. 가슴이 뻥 뚫려 있었다. 총알이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피를 흘리기는 했나 싶을 만큼 입관할 때의 모습은 깨끗했다. 그러나 관을 상무관으로 옮기고 며칠을 나면서 심하게 부패했다. 처음의 깨끗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지켜보는 아내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에 남편을 잃고 김금숙 씨는 험한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 아들을 위해서 살아야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살아야했다. 하지만 남편의 그늘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에 나가 설거지를 하고, 옷가게 점원을 하고, 시청에서 알선해주는 대로 방직공장에서도 일을 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1-05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