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호(田廷皓) 묘역번호: 1-52 생 애: 1925.03.15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장소 불상 기 타: 회사원(중앙고속택시) 유 족: 최옥례(처) 출근을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그날, 전정호 씨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회사에서 나온 그는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하고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은 해가 남아있던 7시가 조금 지난 시각, 집이 있는 지원동 근처까지 왔을 때, 갑자기 또 한 차례 총소리가 들렸다. 화순 주남마을 쪽으로 철수하던 계엄군이 지원동 쪽을 지나며 갈겨댄 총소리였다. 가운데 서서 걷던 전정호 씨가 먼저 근처 철문 밑으로 기어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두 사람도 함께 들어섰다... 허옇게 길게 누워 있는 그 무엇이 남편일 것이라는 생각을 밀어내기 위함이었을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엉뚱한 생각들이 지나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홑청을 들췄다. 손과 발이 차갑게 굳어왔다. 커다란 바윗덩이가 위에서 자신을 덮치려는 듯하는 착각에 자꾸 몸이 움츠러들었다. 집주인이 내온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그녀는 남편의 몸을 살필 수 있었다. 가슴팍에 검은 점 같은 것이 하나 보였다. 등을 돌리니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택시 여덟 대를 타고 동료들이 꽃을 들고 찾아오고,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의 스님이 오시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친척들이 와서 모두 함께 택시를 나눠 타고 전정호 씨를 따라 망월동으로 향했다. 다른 유족들이 ‘꽤나 잘 사는 집인가 보다’라고 착각을 했을 만큼 당시의 상황으로는 성대한 장례였다. 허망한 죽음이었지만 그나마 가시는 길은 덜 외로워 보여 아내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힘든 가계에도 유족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유족회 활동을 하면서 경찰서에 감금되고 구치소에 갇혔던 적도 많다. 어느 해 5월, 아마도 광주에서 제사가 가장 많은 날일 남편의 제삿날, 광주에 이름도 거룩하신 영부인께서 내려오셨다. 유족들은 모두들 달려갔다가 서부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1-02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