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방환(張方煥) 묘역번호: 1-50 생 애: 1922.03.13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순천 사망 원인: 뇌진탕 사망 장소: 광주교도소 추정 기 타: 행상 유 족: 박연순(처) 그녀는 보았다. 5월 21일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점심을 먹고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남편을 보내고, 자신도 잠시 후 구경 나왔다가 학생들이 개처럼 끌려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모여든 시민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소리 지르는 시민들을 향해 휙 돌아선 군인의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내 자식 같은 학생들이 끌려가는 것을 차마 그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말리고 싶었던 시민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인가. 왜 그들은 총을 쏘아 뱃속에 꼼지락거리는 아이를 담고 있는 엄마의 목숨까지 앗아가야 했던 것일까? 박연순 씨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최미애 씨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점심을 먹고 나간 장방환 씨는 밤이 되어도, 다음날 아침이 와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건 대낮에 총에 맞고 쓰러진 임산부의 모습이 떠오르고, 양쪽에서 팔을 붙잡힌 채 끌려가는 학생들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비극이 장방환 씨에게 생겼을 것만 같아서 그녀는 절로 몸이 떨렸다. 이틀 동안이나 남편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불안한 예감이 어쩐지 사실로 드러날 것만 같아 더욱 애가 탔다. 전남대 안에 ‘죽은 사람들 옷을 벗겨두고 갔더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일단 전남대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미 군인들이 철수한 후였다. 고문과 폭행이 자행되었다는 이학부 건물을 찾아갔다. 쓰레기 소각장 안에 피범벅이 된 옷들이 쌓여 있었다.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피에 절어 있는 옷들에서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금방이라도 속에 것들이 다 올라올 것만 같은 피비린내에 그녀는 코를 틀어쥐었다... 아버지의 피 묻은 바지를 발견했다는 말은 감추고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찾아 나서자고 했다. 둘째 아들과 막내 아들, 그리고 박연순 씨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걷고 하면서 시내의 병원을 모조리 찾아 다녔다. 전대병원, 조대병원, 기독교병원, 적십자병원... 안 가본 병원이 없었다. 응급실, 입원실, 중환자실, 그리고 영안실까지 다 찾아보았다. 그렇지만 장방환 씨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창고 안에서는 시체들을 확인하고 있었고 아들들과 조카는 박연순 씨를 아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먼발치에서 안을 기웃거리던 그녀는 남편이 늘 입고 다니던 파자마를 발견했다. 바지는 전남대학교에서 벗겨졌고 파자마는 입고 있었는데 역시 핏물이 벌겋게 들어 있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0-28 00:26